"우리만 감쪽같이 당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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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인 사장 소환해서 체불임금 지급하라』5일 오후 서울동대문경찰서 1층 복도 경기도 부천에 있는 오디오 안테나 제조업체 한국피코의 여성근로자 50명이 쪼그리고 앉아 「화풀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10시 서울세종로 미대사관앞에서 미국인 전액 출자회사인 이 회사의 미국인 사장이 지난 2월말 부도를 낸뒤 3억여원의 임금을 체불하고 본국으로 도피 출국한데 대해 항의농성을 벌이다 강제로 전경버스에 태워져 이곳까지 끌려왔다.
『우리회사 여성근로자들의 일당이 얼마인지 아세요.4천1백원이예요. 한달 뼈빠지게 일해봐야 10만원 조금 넘어요.
원래는 3천6백원이었는데 지난해 6월 노조가 결성된 후 피눈물나는 투쟁끝에 5백원 올렸어요.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미국인 간부들은 모두 비밀리에 출국했고 한국인 간부들도 출국 직전 모두 밀린 월급과 퇴직금을 받고 그만뒀어요. 우리만 감쪽같이 당했어요』이들은 그동안 미대사관·미상공회의소·국회·노동부등을 찾아다니며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호소했으나 가는 곳마다 「우리 소관이 아니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이 회사에서 번 「푼돈」으로 4남매를 키워왔다는 김선임씨(46)는 『많은 동료들이 「어차피 밀린 임금 받기는 틀렸다』며 다른 회사로 많이 옮겨갔어요. 나는 오기가 나서라도 그렇게 못해요. 지난 3월말 미상공회의소 농성때 백골단에 매나 맞지 않았다면 또 몰라요』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미국인 사장× 정말 괘씸해요. 생각 같아서는 미대사관 앞에서 마음껏 농성하도록 놔둬야 하는데…』이 경찰서 담당 간부가 이들에게 때늦은 도시락 점심을 먹여 오후5시30분콤 전원 귀가시킨뒤 나지막이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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