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북한 대학생 서울나들이 경희대 간담회|"대학에 진학 공부하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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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체코와 폴란드에서 유학중 지난 2월25일과 지난달 6일 각각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대학생 김은철(23·체코 프라하대)·동영준(얽·폴란드 그다니스크대) 군 2명은 3일오전11시 경희대 중앙도서관 시청각 교육실에서 이학교 학군단(ROTC)학생 1백80여명과 간담회를 갖고 북한의 생활 실상과 그동안 한국에 와 느낀점등을 상세히 털어놓았다.
이에앞서 2일오후에는 동군과 폴란드에서 함께 망명했던 김운학군(24·바르샤바공대) 2명이 처음으로 서울나들이에 나서 덕수궁·이화여대·롯데쇼핑센터·여의도 63빌딩등지를 둘러보며 일반시민·학생들과 한국과 북한사회의 차이점등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라고 감탄하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한국의 대학에 진학, 못다한 공부를 마친뒤 사회발전에 한몫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희대 간담회>
경희대부설 동북아연구원(원장 조정원교수) 주최로 열린이날 간담회는 북한의 두 대학생이 평양학생축전·남북통일·문목사 방북등에 대해 경희대생들이 던진 20여개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간담회에서 김군은 4개월간의 한국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듯 농담까지 섞어가며 시종 여유있게 답변했으나 동군은 다소 들뜨고 상기된 모습이었다.
다음은 간추린 일문일답.
- 북한의 주민생활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듣고 있다. 최근의 사정은 어떤가.
▲평양축전 준비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보기 흉하다해서 키작은 사람이나 곰보등이 모두평양시 바깥으로 추방당했다. 주민들은 외국인들에게 쌀독이 가득찼음을 보여주기 위해 하루 2백g씩의 쌀을 비축하고 있어 식량사정이 더욱악화됐다.
주민들은 일과후 밤늦도록 축전준비 건설공사에 동원되는 일이 많아 이 행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불평하고 있다.
- 문(문익환목사의 방북에 대한 개인적 견해와 북한내의반응은 어떤가.
▲남한은 통일을 「민족화합」으로 보는 반면 북한은 통일을 「남조선해방」으로 보고 있다. 문목사가 실상도 잘모르는 상태에서 방북한 것은 통일에 도움이 안되며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크다.
- 북한주민들도 5·18 광주민주화운동등 남한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북한에서는 5·18을「광주인민봉기」로 부르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당시 조금만 도와줬더라면 남조선을 해방시킬수 있었는데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한사정에 대해서는 왜곡돼 알려진 것이 많다. 예를들어 75년 육영수여사 저격사건 같은 것은 박대통령이 직접 쏴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북한대학에서는 마르크시즘에 대한 연구나 비판이 왕성한가.
▲북한에는 김일성 주체사상 관련서적 이외에는 다른 이념서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에 와보니 마르크스-레닌주의서적이 서점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어 세상이 거꾸로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북한에도 유흥업소가 있는가.
▲남한에 흔한 카페나 레스토랑은 거의 없고 만경대등에 위락시설이 있지만 사람이 붐벼 잘 가지 않는다. 가끔 화투를 치거나 카드놀이를 하는 것이 주요 오락이다.
- 북한에서 가장 인기있는 직업은.
▲당간부·외교부 근무자·군인·예술인등의 순이다. 외교부 근무자는 달러를 손에 쥘 기회가 있고 군인은 의복등을 정기적으로 지급받는다는 매력이 있어 인기가 있다. 대학교수는 대우가 좋지 않아 별로 인기가 없다.
- 전대협의 축전참가계획은 어떻게 생각하나.
▲남한학생들의 동기나 목적이 아무리 순수하더라도 북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말것이다.
준비단켸에서부터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서울나들이>
북한의 두 대학생은 오후2시좀 임시 거쳐를 나와 안내원들과 함께 8시간 가량 시내 곳곳을 둘러보았으며 회사원 박모씨(32·서울 개포동) 집으로 초대돼 박씨 가족과 함께 저녁을 들며 환담을 나눴다.
넥타이를 맨 말쑥한 정장차림으로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거처를 나선 이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덕수궁.
김운학군은 『평양에는 조선시대 건축물이 거의 없다』며 『평양에는 궁이라는 이름붙은 곳이 딱 한군데 있는데 김일성 집무실인 「주석궁」이 바로 그곳』이라고 했다.
이들은 덕수궁 현판 「대한문」가운데 「대」자만 알아봤고 나머지 두글자는 읽지 못했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을 강조, 한자교육이 없어진지 오래된 때문. 이들은 한국에 온뒤 쉬운 한자 몇자를 깨쳤다고 했다.
이들은 이어 이화여대를 방문, 때마침 응원연습을 하던 50여명의 여대생과 어울려 디스코춤을 추는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뒤 유재경양(21·간호학과3) 등 학생 6명과 둘러앉아 북한에서의 대학시절, 3년간의 유학생활 평양청년학생축전, 통일문제등에 관해 1시간가량 대화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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