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천안문 … 하늘도 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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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 중국 40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피의 일요일을 맞이했던 북경의 4일 밤과 5일 새벽은 공포와 죽음의 도시였다.
마치 전쟁터 같이 어수선한 천안문 광장에서 불과 7km 떨어진 동직문에는 군 트럭 2대와 지휘 차로 보이는 군 지프가 화염 속에 싸여 불꽃을 날름거리고 있었으며 가끔 굉음을 내고 있었다.
불타는 군 트럭 뒤로 약 20m쯤에는 군중들에게 포위된 군 트럭 앞으로 끌려나온 박박머리의 병사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먹이며 호소하고 있다.
『시민 여러분,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오늘(5일) 새벽 북경에 왔으며 우리 부대장은 27군이 쏜 총탄에 다리 관통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의 편입니다. 제발 살려주시고 차도 불태우지 말아주십시오. 차가 불타면 우리는 처벌을 받게됩니다. 여러분 부탁, 부탁드립니다』
노기띤 군중들의 태도가 다소 완화되면서 여기 저기서 질문이 터져 나왔다.
▲어느 부대에서 왔는가.
-심양군구에서 왔습니다.
▲무엇하러 왔는가.
-우리는 모릅니다. 출동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계엄군들이 우리 시민을 대량 살상했는데 너희도 같은 임무를 띤 것 아닌가.
-아닙니다. 우리는 총은 있으나 총탄을 지급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 새벽 천안문 쪽으로 가다가 우리 부대장도 총상을 입었으나 우리는 총탄이 없어 대응하지 못하고 이곳으로 후퇴한 것입니다.
▲총을 쏜 자들은 어느 부대인가.
-27군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편의 군중들이 『저 놈도 같은 놈들』이라는 고함이 터졌으나 『불쌍하니 살려주자』는 편이 지배적이었다.
천안문으로 통하는 장안가에 위치한 일급 호텔은 엘리베이터 앞에 「미국 시민은 호텔 밖을 나서지 말라」는 미대사관 이름의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자정이 넘은 5일 0시30분쯤 적막 속의 장안가에는 이따금 번개를 동반한 비가 뿌렸다.
현상황과 분위기 파악을 위해 자전거 3륜차를 빌려 장안가를 따라 가던 기자는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고막을 찢는 듯한 총 소리에 놀라 3륜차 운전사와 함께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후 포복으로 큰 건물(CITIC)로 도망쳤다. 붉은 별을 그린 5대의 탱크와 20대의 장갑차가 시민들이 설치해 놓은 바리케이드를 밀어붙이고 천안문 쪽으로 질주하면서 총을 계속 쏘아댔다.
CITIC 빌딩 입구에는 흩어져 도망온 군중들이 건물기둥 뒤에 엎드려 있었으며 총소리는 계속됐다.
천안문 행을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와 한숨을 돌리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5대의 탱크와 50여대의 장갑차가 긴 포문을 흔들거리며 장안가를 따라 천안문 쪽으로 질주하고 있었으며 이따금 총소리가 났다. 이때가 새벽2시.
장안가는 마른 번개 속에 탱크와 장갑차에서 내뿜은 매연이 낮게 드리웠고 호텔 베란다마다 투숙객들이 장안가를 따라 질주하는 탱크와 장갑차를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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