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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평 - 미술] 역사의 틈새를 비추는 미술의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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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호 31면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하나의 전시회로 한 시대를 개괄한다는 것은 역사학자가 단대사(斷代史)를 저술하듯 어렵고도 조심스런 일이다. 개괄하려는 시대가 일제 강점으로 인해 13년 만에 막을 내린 대한제국(1897~1910) 시기라면 그 어려움은 배가된다. 애써 외면해 왔던 이 시기를 미술품을 통해 재조명한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가 관객들의 흥미로운 반응 속에서 2월 6일 막을 내렸다.

전시를 통해 대한제국을 재조명하기 시작한 것은 한일합병 100주기를 맞아 2010년에 열렸던 ‘100년 전의 기억-대한제국’(국립고궁박물관, 서울대 규장각)부터였다. 전시는 ‘유물자료’를 통해 대한제국 시기 실행됐던 부국강병과 근대화 정책을 조명하였다. 이와 함께 일본과의 합병조약문 등 ‘문건’들을 전시하고 일본의 주권 침탈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시대의 명암을 함께 제시했다. 2012년의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전(국립현대미술관)은 ‘사진’이라는 새로운 시각 매체를 다뤘다. 제국의 자주성을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됐던 사진의 긍정적 측면과 일본에 의해 식민통치의 효과적 수단으로 이용됐던 부정적 측면을 함께 규명한 것이다. 두 번의 전시가 미술품보다는 사진과 문건 등 사료를 적극 활용했던 것은, 시대의 어둠에 묻혀서 잊혔던 빛의 실체를 찾아내고자 했던 당시 역사학계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었다.

‘해학반도도’, 1902년 추정, 비단에 채색과 금박, 227.7x714㎝.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해학반도도’, 1902년 추정, 비단에 채색과 금박, 227.7x714㎝.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2019년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는 사진과 문건의 비중을 낮추고 나전, 도자, 회화, 불화 등 황실 미술품을 중심으로 ‘빛의 측면’에 집중했다. 태극기가 선명히 묘사된 의궤와 병풍, 대한제국 군복을 입은 호법신이 등장하는 공주 신원사의 불화를 발굴해 전시함으로써 제국의 자의식을 드러냈다. 또한 프랑스 잡지의 표지 속 고종(高宗)의 다양한 형상을 통해 ‘은자(隱者)의 나라’가 베일을 벗고 세계무대에 등장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압도적 크기의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 병풍’은 학과 서운(瑞雲) 등 전통 도상을 이용하여 제국의 장수를 기원하고 권위를 드러내고자 했다.

시간을 가지고 전시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진열된 미술품들에 아로새겨진 것이 단순히 빛의 측면만이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신·구 문명이 만나고 충돌하면서 빚어낸 ‘모색과 좌절’의 흔적이 미술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해학반도도 병풍’에 보이는 이질적인 황금색 바탕과 청록(靑綠)산수를 연상시키는 암석, 화면 곳곳에 베풀어진 입체적 음영 묘사에서 우리는 구미 열강과 일본·중국이라는 삼중 압박에 놓인 제국의 위상과, 이를 뚫고 비상하고자 하는 황실의 안간힘을 감지하게 된다. 세련된 기형의 나전칠기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나전의 부활을 알려주는 동시에, 산업화 이후 이식된 일본식 미감을 보여준다. 만찬에 사용되었을 양식기들은 전통 백자가 쇠퇴하며 서양 수입 도자로 교체되는 과정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서양과의 활발한 만남과 교류를 위한 제국의 노력을 암시한다. 미술품에 각인된 열정과 고민과 혼돈의 흔적들은 대한제국이라는 시대 자체가 안고 있던 모순과 한계의 시각적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시대를 호흡했던 이들의 체취가 담긴 미술품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서로 다른 문명이 얽히고 교차하는 ‘지점’, 삼투하고 교직 되는 역동적 ‘과정’ 그 자체인지 모른다. 우리가 칭하는 ‘근대성’의 다양한 발생적 형태들이 ‘식민수탈과 근대화’ 혹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화된 잣대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은, 이미 축적된 연구성과들이 증명하는 바이다. 대한제국이 추구했고 족적을 남겼던 대한제국 고유의 근대화의 길이 무엇이었던가를 동아시아적이고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풀어내는 일은 이제 남은 세대의 몫이다. 미술품은 이분법의 도식을 넘어선 역사의 시공간에 생명을 부여하고 빛을 드리우는 유용한 도구일 수 있다. 미술은 ‘문자와 기록’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시각적 자료로서 시대를 증거하기 때문이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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