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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헌법재판관에 靑비서관···국회 파견판사는 '승진 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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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달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사위 소속 공무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법사위 법안 자문을 담당하는 전문위원(2급 이사관)은 입법고시 출신인 국회직 공무원과 사법고시 출신의 판·검사 출신으로 구성되며 현재 모두 남성이다. [뉴스1]

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달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사위 소속 공무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법사위 법안 자문을 담당하는 전문위원(2급 이사관)은 입법고시 출신인 국회직 공무원과 사법고시 출신의 판·검사 출신으로 구성되며 현재 모두 남성이다. [뉴스1]

'서영남(서울대·영전(榮轉)·남성)'

재판청탁 논란된 국회 파견판사 15명 전수조사 #서울대 압도적, 서울중앙지법·주미대사관 등 영전 #이영진 헌재재판관·김인겸 행정처 차장도 국회 경력 #"파견판사 전문성 필요" vs "재판청탁 경로 활용"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서 국회의원의 재판청탁 창구로 활용돼 논란이 된 국회 파견판사는 위 세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이들 중 73%가 서울대를 나왔고 파견 뒤 대부분 요직을 차지하며 승진 코스를 밟았다. 성별은 모두 남성이었다.

중앙일보는 2002년부터 올해까지 법원행정처가 국회에 파견한 판사 15명에 대해 실명 전수조사를 했다. 법원행정처가 국회에 익명으로 제출한 명단을 법원 인사자료와 대조하며 일일이 확인했다. <그래픽 참조>

파견판사는 총 15명에 불과했지만 이들 중에서 현직 헌법재판관(이영진·22기)과 한때 차기 대법관 1순위 자리였던 법원행정처 차장(김인겸·18기)이 배출됐다. 정치권과의 네트워크가 중요한 청와대 법무비서관(이제호·강한승)도 둘이나 나왔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현재 파견 중인 판사 2명을 제외한 13명 중 5명의 판사가 국회 근무를 마친 뒤 서울중앙지법으로 복귀했다. 주미대사관 등 외교부 파견이 2명, 1년간 비교적 한직에 있다가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영전한 판사가 2명, 파견 후 법원행정처로 직행한 경우가 1명이었다.

남은 판사들도 서울고법이나 동부지법 등 주요 지법으로 복귀했다. 국회 파견 판사 중에 '아쉬운 인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중앙지법과 대법원 등에 보직이 많아 이례적인 인사는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전국 3000여명의 판사에게 국회는 주요 보직과 높은 승진 확률을 보장하는 '영전의 코스'였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입법과 예산 등 국회와의 네트워크를 원하는 법원행정처에서는 '에이스 판사'를 파견했다"며 "법관들 사이에서도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되기 위해선 정치권과의 인맥이 필요해 한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법원이 국회에 판사를 보내기 시작한 건 2002년부터다. 1990년대 말 법무부가 국회에 검사를 파견한 뒤 사법 관련 법안에서 검찰 입김이 커지자 뒤늦게 따라갔다. 이 변호사는 "선진국 중에선 일본이 입법 과정에서 현직 판사들의 의견을 일부 참고하는데 우리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법원은 평판사인 국회 자문관은 2002년, 부장판사급인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2009년부터 파견했다. 이중 전문위원은 법원에 사표를 내고 국회에 가지만 파견 기간이 끝나면 다시 법원에 재임용 되는 수순을 밟기 때문에 사실상 파견으로 본다. 검찰 출신 법사위 전문위원과 같은 식이다.

파견 목적은 법안 자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상 국회와 대법원 사이의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 법사위 소속인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파견 판사들은 대국회 협력관 역할을 해왔는데 이젠 사라질 때도 됐다"고 말했다.

지난 18년간 큰 무리없이 유지돼 온 파견판사가 폐지 논란에 휩싸인 것은 지난달 15일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재판개입 혐의로 추가 기소한 뒤 부터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이 2015~2016년 상고법원 추진과정에서 서영교·전병헌·이군현·노철래 등 여야 의원의 재판 청탁을 파견판사를 통해 건네 받은 것으로 보고있다. 가장 잘 나가는 판사들만 모였다는 국회 파견판사가 '재판청탁 창구'로 전락했다고 본 것이다.

2002년 법원의 최초 국회 파견판사였던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돼 지난달 6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판사들도 국회가 승진 코스인 것을 알기에 근무 기간 법원행정처 등 윗선의 지시를 철저히 이행하는 관료화 경향을 보였다"며 아쉬워했다.

국회사무처는 재판청탁 논란이 확대되자 올해부터 법사위 전문위원으로 판·검사를 받지 않기로 했다.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이 취임한 지난해 7월부터 폐지가 추진됐지만 실제 대법원이 전문위원을 보내지 않기로 물러선 것은 재판청탁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39;양승태 사법부&#39; 당시 사법농단 의혹사건 &#39;키맨&#39;으로 지목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 검찰에 출석하는 모습. 임 전 차장은 지난달 &#39;정치인 관련 재판개입&#39; 혐의로 검찰에 추가 기소됐다. [뉴스1]

&#39;양승태 사법부&#39; 당시 사법농단 의혹사건 &#39;키맨&#39;으로 지목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 검찰에 출석하는 모습. 임 전 차장은 지난달 &#39;정치인 관련 재판개입&#39; 혐의로 검찰에 추가 기소됐다. [뉴스1]

유 사무총장은 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입법의 관문 기능을 하는 법사위에 사법 권한을 지닌 판·검사가 관여하는 것은 삼권 분립에 어긋나는 행위라 폐지했다"고 말했다.

서영교 의원이 재판 중인 지인 아들의 선처를 부탁했던 판사는 평판사인 국회 자문관이라 반쪽짜리 개혁이란 말도 나온다.

하지만 유 사무총장은 "부장판사 출신의 전문위원을 통해 크고 작은 재판청탁이 이뤄져 온 것으로 안다"며 "국회와 대법원, 헌법재판소, 검찰 사이의 소통 창구가 필요해 자문관은 유지키로 했다"고 말했다.

국회사무처는 전문위원으로 현직 판·검사를 대신해 경력 변호사를 채용할 방안도 고민했다. 하지만 연봉 8000만원 수준(2급·이사관)으로는 경력 변호사를 구하기 어려워 국회 입법고시 출신으로 대체키로 했다.

국회 내부에선 갑작스런 판사 출신 법사위 전문위원 폐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법안 심사와 자문 과정에서 현직 법관만큼 전문성을 가진 법조인이 드물기 때문이다.

법사위 소속 여당 보좌관은 "파견판사를 재판청탁에 사용한 일부 의원들이 문제"라며 "입법 과정에서 파견 판사들의 순기능이 무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2015년 재판 중인 지인 아들의 재판을 청탁했다는 의심을 받는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지난해 10월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모습. 서 의원은 재판청탁이 아닌 억울한 시민에 대한 선처를 요청한 것이라 해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재판 중인 지인 아들의 재판을 청탁했다는 의심을 받는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지난해 10월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모습. 서 의원은 재판청탁이 아닌 억울한 시민에 대한 선처를 요청한 것이라 해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사위 소속 민주당 송기헌 의원도 "재판청탁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입법 과정에서 현직 판사의 조언은 굉장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이해충돌 등으로 현직 판사 파견이 어렵다면 경력이 풍부한 전관 출신 변호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이자 19대 국회에서 정의당 의원으로 법사위 활동을 했던 서기호 변호사는 "이제 판사가 입법 기관인 국회에서 근무하다 다시 사법부로 돌아가는 관행을 시민들이 납득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입법 과정에서 판사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면 국회가 퇴직 후 일정 기간이 지난 전관 출신 변호사를 채용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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