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꺾인 검찰독립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회의 이철규군 변사사건 국정조사단에 대한 검찰의 수사자료 제출거부 소동은 검찰이 자료를 내놓기로 함으로써 한판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 소동의 언저리에는 뭔가 개운치 못한 여운이 남아있다.
국회조사특위는 1일 광주지검에서 보고에 앞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특위는 이미 지난달 30일 검찰 측에 참고인 진술조서 등 일체의 수사자료를 제출할 것을 결의했고 법무부 측은 현지에서 자료를 내주기로 약속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순석 광주지검장은 △검찰은 수사기록을 제출한 선례가 없으며 △이 사건은 수사중이고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완강히 자료제출을 거부했다.
검찰 측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있는 「사생활 침해」와 「수사중인 사건」이란 조항을 근거로 제시했고 헌법 기본권 조항에 수사밀행주의가 보장돼 있다고 위헌론을 들먹이며 일본 등 외국사례까지 제시했다.
결국 야당의원들이 조사를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고 여당 측이 서울에 긴급전화를 거는 등 소동이 있은 뒤 자료를 제공하라는 「위로부터의 지시」에 의해 정치적으로(?) 해결됐다.
검찰 측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자세는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처사였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군의 사망원인을 둘러싼 의혹이다. 검찰로서는 그 의혹의 대부분이 재야단체의 「트집」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날 검찰이 정권으로부터 독립해 검찰권을 행사했더라면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수사의 밀행주의와 검찰권의 독립성·중립성을 주장하다가 서울 전화 하나로 태도가 바뀐다면 스스로 그들 주장에 일관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의심스럽다. 검찰이 외국의 관례대로, 헌법의 정신대로 중립적 권리를 주장하려면 정치로부터의 독립성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할 것이며 그것은 일반의 의혹을 풀고 신뢰를 회복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기회에 짚어두고 싶은 점은 국회조사단의 태도다. 자료제출 요구는 7일 전에 하도록 되어있다. 하루 전날 덜렁 자료제출을 의결하고 당장 내놓으라는 식의 행동은 법을 무시하는 방자한 처사다.
더욱이 국정감사조사법이 「과도한 입법」이라는 비판이 있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이 법이 제정될 당시 야당 측은 전두환 전대통령과 그 친·인척 등 5공 비리를 파헤칠 목적으로 증인 출두나 자료제출을 거의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했었다.
부분적으로는 헌법규정보다 앞서가고 형사소송법의 조항과도 어긋나는 조항도 있다. 다만 5공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따른 조항으로 양해가 됐을 뿐이다.
국회는 그 점을 외면하고 자칫 권리의 과잉행사가 될 수도 있는 법을 스스로 절제하면서 합리적으로 운용하지 않는다면 국회의 오만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광주에서>
김진국 <정치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