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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져 명절 맞은 노량진 수산시장, 분위기도 손님도 딴판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31일 오후 2시쯤 구시장 풍경. 설 대목인데도 한산한 모습이다. 김정민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2시쯤 구시장 풍경. 설 대목인데도 한산한 모습이다. 김정민 기자

"시장이 반으로 쪼개지니 매출도 반으로 줄었죠."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31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구시장의 한 수산물 가게 상인은 홍어를 손질하며 한숨을 쉬었다. 건어물을 취급하는 대림수산에는 굴비를 사러 간간이 손님이 왔다. "백화점보다 크고 30~40%는 싸다"라며 상인 최윤미(43)씨는 직접 30㎝ 자까지 굴비에 대보였다. 손님들은 "크긴 크다. 탐스럽네" 하면서도 "더 둘러보고 오겠다"라며 빈손으로 문을 나섰다. 굴비·병어·오징어·홍어·상어 등 차례상에 올라가는 해산물이 매대에 놓여있었지만, 명절 대목을 앞둔 구시장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구시장 상인 최윤미(43)씨가 구경하러 온 손님들에게 굴비를 보여주고 있다. 김정민 기자

구시장 상인 최윤미(43)씨가 구경하러 온 손님들에게 굴비를 보여주고 있다. 김정민 기자

바다 냄새 대신 연탄 냄새 남은 구시장

구시장 상인들이 연탄난로 불을 쬐며 겨울의 냉기를 견디고 있다. 김정민 기자

구시장 상인들이 연탄난로 불을 쬐며 겨울의 냉기를 견디고 있다. 김정민 기자

상인들은 손님을 기다리며 연탄난로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지난해 11월 5일 노량진 구시장에는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구시장 상인들과 수협중앙회의 갈등 때문이다. 갈등은 2016년 3월 문을 연 신시장에 일부 상인들이 "점포 자리가 좁다" "임대료가 비싸다" 등의 이유로 입점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입점 거부 상인들은 몇 십 년간 장사를 해오던 자리를 지키며 수협 측과 맞섰다. 같은 해, 수협중앙회는 구시장에 남은 상인 358명을 상대로 명도 소송을 냈다. 3년의 법정싸움 끝에 지난해 8월 대법원은 수협의 손을 들어줬고, 이후 4차례 강제 집행 시도가 있었다. 전기와 수도 공급은 이 과정에서 중단됐다.

지난해 9월 17일 수협 직원들은 신시장 입점을 요구하며 최윤미(43)씨의 가게를 헤집어놓았다. [최윤미 상인 제공]

지난해 9월 17일 수협 직원들은 신시장 입점을 요구하며 최윤미(43)씨의 가게를 헤집어놓았다. [최윤미 상인 제공]

과거 1000여 개 점포가 있었던 구시장엔 이제 130여 개 점포만 남아 있다. 구시장의 한 상인은 "작년 추석 때는 그럭저럭 매출이 괜찮았는데 올해 설은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장사를 준비하던 상인 강모(53)씨는 "장사를 준비해도 손님이 없다, 환장하겠다"라고 하소연했다. 연탄난로에 손을 쬐던 상인들은 "그래도 추운데 고생한다고 일부러 구시장을 찾는 어르신들이 있다"라며 "그런 분들 덕분에 버틸 만하다"고 웃었다. "40년 전 물 끌어와 개척하며 장사 시작해 시장 키웠는데…"라며 섭섭함을 내비친 구시장 상인들은 조용한 대목도 걱정이지만 설 이후 5번째 강제 집행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수협, "당장 강제 집행도 가능"  

같은 시간(지난달 31일 오후 2시), 구시장과 불과 차도 2개를 사이에 둔 신시장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상인들은 "매출이 요즘 어떠냐"는 기자의 물음에 "별 차이 없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같은 시간(지난달 31일 오후 2시), 구시장과 불과 차도 2개를 사이에 둔 신시장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상인들은 "매출이 요즘 어떠냐"는 기자의 물음에 "별 차이 없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구시장을 나서자 차도 2개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신시장이 보였다. "꼬막은 얼마씩 해요?" "문어는 물건 괜찮나요?" 일렬로 늘어선 신시장 수산물 가게는 가격을 묻고 물건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전기가 부족해 한낮에도 어두컴컴했던 구시장과 달리 신시장은 환했다. 신시장 상인들은 "구시장 상인들도 같이 이곳으로 들어와야 장사가 더 잘될 텐데, 갈등만 자꾸 비치니 시장 이미지 전체가 흉흉해졌다"며 말을 아꼈다.

몇 년 전 신시장으로 떠난 상인의 가게가 구시장에 그대로 방치돼있다. 이곳 주차장은 현재 수협 측이 접근을 금지한 상태다. 구시장 상인들은 "주차장을 못 쓰게 해 손님들이 더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김정민 기자

몇 년 전 신시장으로 떠난 상인의 가게가 구시장에 그대로 방치돼있다. 이곳 주차장은 현재 수협 측이 접근을 금지한 상태다. 구시장 상인들은 "주차장을 못 쓰게 해 손님들이 더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김정민 기자

수협 측은 "3년간 끌어왔는데 무슨 대화를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정당한 법 집행을 하는 것뿐인데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있다'라는 프레임은 부당하다"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와 노량진 수산시장 구시장 상인회 측은 지난달 30일 '함께 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노량진 수산시장 갈등 해결을 위해 서울 시민 공청회를 열자고 요구했다.

김정민·이수정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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