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경기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생활 경제가 팍팍해지고 있다. '월드컵 특수'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정작 월드컵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면서 장사가 더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자영업자들이 많다. 앞으로 경기가 나빠질 것이란 예상으로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 경기는 실제 급속히 냉각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수출이 그런대로 잘 되고 있어 올해 5%선의 경제성장은 무난할 것이란 낙관론을 계속 펼치고 있다.
◆ 다시 냉각된 소비자 심리=한국은행이 전국의 30개 도시 2469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23일 발표한 '2분기 소비자동향조사(CSI) 결과'에 따르면 현재 경기판단 CSI는 68로 전분기에 비해 19포인트나 급락했다. 또 향후 경기전망 CSI 역시 102에서 81로 21포인트 추락했다. CSI는 100을 넘으면 6개월 전보다 현재의 경기가 좋아졌다고 보는 소비자가 나빠졌다는 쪽보다 많다는 뜻이고, 100 미만은 그 반대를 의미한다.
경기판단 CSI는 지난해 3분기 64를 기록한 뒤 4분기(82)와 올 1분기(87) 연속 상승했으나 2분기 들어 급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경기전망 CSI 역시 2분기 연속 상승한 뒤 급락하고 있다. 생활형편과 생활전망, 가계수입 전망과 소비지출 전망 역시 나빠졌다. 특히 취업기회 전망에 대한 체감지수는 12포인트나 급락한 78에 그쳐 국민의 일자리에 대한 걱정을 반영했다.
한은은 "이 같은 소비자 체감경기 둔화는 전 소득 계층에 걸쳐 골고루 나타났다"며 "향후 경기에 비관적인 시각이 소비자들에게 폭넓게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승용차를 사겠다는 응답 비중도 4%로 전분기보다 1%포인트 떨어졌다.
◆ 월드컵 경기 냉랭=월드컵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과는 달리 월드컵 특수는 신통치 않다. 디지털TV와 LCD TV 등은 판매량이 약간 늘고 있지만 음식점이나 재래시장에선 "미약하던 경기의 불씨마저 꺼지는 것 같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10년째 가방을 팔고 있는 박모(43)씨는 "월드컵을 보느라 여행도 자제하기 때문인지 이달엔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며 어려움을 호소했고, 바로 옆 가게 주인 서모(33)씨는 "중국산 응원도구를 갖다 팔고 있지만 그다지 남는 장사는 못 된다"고 털어놨다. 안양시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는 남모(47)씨도 "주요 경기가 있는 날이면 직장인들이 일찍 귀가하면서 매출이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경기 전망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23일 "내수가 회복 흐름을 이어가고 수출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며 "올 경제성장률은 5%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경영자들, 경기위축 우려=한국CEO포럼이 회원기업 6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고경영자(CEO)들의 경기 전망은 비관적이었다.
대부분의 CEO들은 하반기 경기가 상반기에 비해 '상당히 더 위축될 것'(44.5%)이라거나 '약간 하향할 것'(50.79%)이라고 응답한 반면 '상반기와 비슷할 것'이란 응답은 4.76%였으며 '상반기보다 좋아질 것'이란 응답자는 아예 없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경기 회복력이 그다지 강하지 못한 가운데 주가가 떨어지고 유가와 환율 등 대외변수까지 악재로 작용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며 "정부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북돋울 정책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동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