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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월드컵 열기 이후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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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유월은 월드컵 응원 열기로 더욱 뜨겁다. 저마다 붉은 셔츠를 입고 거리에, 광장에 모여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쳐댄다. 4년 전 시작된 거리응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고, 새벽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자리를 지키는 이색적인 모습은 세계적인 뉴스가 되고 있다. 이런 행동들은 누가 시켜 하는 게 아니라 월드컵이라는 상황 속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사람의 몸에도 자율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다. 대뇌에 중추를 두고 있는 일반신경계가 아닌 자율신경계가 지배하는 부분이 그것으로, 대뇌의 지시나 명령에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신체를 보호하고 외부환경 변화에 적응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일을 한다. 이러한 자율신경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이뤄져 있다. 교감신경은 주로 우리 몸의 위기나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신체방어를 위해 혈압을 올리고, 맥박을 높이거나 땀을 나게 하는 등의 위기 대처 작용을 한다. 반면 부교감신경은 소화를 시키고 잠을 자고 소변을 보는 등 평소에 인체의 조화를 만들어 위기 상황 발생 시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자율신경이 튼튼한 사람은 어떤 환경변화에도 잘 적응해 최적의 신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조직사회에서도 회사의 규정이나 경영진의 지시와 무관한 자율적인 행동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신체의 자율신경 행위와 유사한 이런 행위를 조직 공민(公民) 행위(OCB.Organizational Citizenship Behavior)로 볼 수 있다. OCB는 1988년 사회학자 오건(Organ)이 명명한 말로 "지시나 보상 시스템과 무관하게 조직의 효과적인 작용을 촉진시켜 주는 개인의 자발적 행동"을 뜻한다. 공민행위 중에는 '남이 버린 휴지를 치우지는 않지만 나는 버리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행위에서부터, 회사의 명성을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회사의 장점을 널리 알리거나 타 부서의 일까지 도와주는 등 보다 적극적인 행위도 있다.

공민행위의 좋은 예로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여직원의 경우가 있다. 원래 항공사 규정에는 승객이 애완동물을 데리고 탑승할 수 없게 돼 있다. 이를 모르고 애견을 동반한 승객의 '2주 휴가를 망치지 않기 위해' 직원이 그를 대신해 자기 집에서 돌보다가 돌려준 사례가 그것이다. 이 일은 후에 마케팅학회나 경영학 서적 등에서 고객 감동 사례로 자주 인용됨으로써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명성을 크게 높여준 일화로 유명하다.

신체가 튼튼하고 경쟁력을 가지려면 신경계와 자율신경계 모두 건강해야 한다. 조직사회도 잘 정비된 규정이나 명령체계와 함께 자발적 공민행위들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튼튼하고 경쟁력 있는 조직이 될 것이다. 특히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건강한 자율신경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미국의 빅3를 능가하는 것은 종업원들이 회사에 헌신하는 공민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는 진단한다.

우리 사회도 월드컵 응원과 같은 자발적 공민행위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국가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월드컵, 또는 특정한 위기상황에서 구성원이 단결하고 스스로 사회나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것(교감신경)이 중요한 것처럼 시합이 끝나거나 위기상황이 반전된 뒤 자리를 정돈하거나 차분히 미래를 준비하는 자발적 행위(부교감신경)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월드컵 열기와 더불어 조성된 자발적인 나라 사랑의 행동들이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지속되고, 그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한 차원 높은 공민행위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서교일 순천향대 총장·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