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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몸 둘 곳 없는 이들 위한 집짓기, 해비타트 운동으로 또다른 삶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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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96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맡아 핵무기 개발을 종식하고 더욱 안전한 원자력으로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과학자의 꿈은 아쉽게도 접어야 했지만 할 일은 많았다. 고등기술연구원(IAE) 원장으로 복귀하면서 젊은 연구진이 도전하는 청정에너지 기술인 ‘석탄 가스화’ 연구에 기대를 걸었다. 석탄 가스화는 화석연료인 석탄을 고온·고압에서 산소와 물을 가해 합성가스로 만든 뒤 오염 원인인 황 화합물 등을 제거해 고효율·친환경 복합발전에 이용하는 기술이다. 지금도 연구 중인 첨단 친환경 에너지 기술로 2030년까지 1200조원의 블루오션 시장이 기대된다고 한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25) #<78> 한국 해비타트 이사장 취임 #IAEA 사무총장 꿈 무산 #고등기술연구원 복귀하며 #석탄가스화 연구에 기대 #98년 대우 무너지며 위기 #해비타트 활동하며 봉사 #한국 사회의 희망 발견

해비타트 창시자인 밀러드 풀러(왼쪽)와 함께 한 정근모 박사. [사진 정근모 박사]

해비타트 창시자인 밀러드 풀러(왼쪽)와 함께 한 정근모 박사. [사진 정근모 박사]

하지만 98년 국내 2위, 세계 18위 기업집단인 대우그룹이 98년 무너지면서 고등기술연구원의 연구도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경제는 외환 위기로 힘들어졌고 국민은 새 정부를 선택했다. 98년 2월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2001년 4월 한국전력 발전부문을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자회사로 분할했고, 발전설비를 만들던 공기업 한국중공업을 두산그룹에 매각했다. 돌이켜 보면 엄청난 시련기였지만 미래를 위해 새로운 청사진과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기도 했다.
나는 이 시기에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몰두하며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 수 있었다. 해비타트는 자원봉사자들이 집을 지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분양한 뒤 무이자로 조금씩 갚아나가게 하는 국제적·비영리적 사회봉사 운동이다. 미국에서 아픈 아들을 두고 기도하면서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나는 언젠가는 사랑과 봉사에 전념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해비타트가 바로 그 응답이었다.

한국해비타트 이사장 시절의 정근모 박사(오른족)가 건축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해비타트 이사장 시절의 정근모 박사(오른족)가 건축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나는 94년 3채의 집을 짓고 첫 주택을 장애인 부부 가정에 분양하면서 발족한 공익법인 한국 해비타트의 초대 이사장을 맡아 20년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땀을 흘렸고 2015년 이후 명예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초창기에 헌신한 고왕인 박사와 최영우 사무국장의 열정을 잊을 수 없다.
76년 미국 조지아주 아메리커스에서 밀라드 풀러(35~2009년) 변호사가 시작한 해비타트는 사람을 거듭나게 한다. 81년 재선에 참패하고 은퇴해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즈로 돌아간 지미 카터(95, 77~81년 재임) 전 미국 대통령에게 자원봉사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도록 권유한 사람이 풀러다. 자칫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뻔했던 카터는 헌신적인 해비타트 봉사로 ‘가장 사랑받는 전직 미 대통령’으로 거듭났다.
해비타트 운동을 하면서 소망과 믿음, 사랑을 넉넉히 체험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아름다운 젊은이들, 따뜻한 사회인들, 이웃을 도우려는 어른들, 낮은 데로 임하는 기업인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기부하고 땀을 흘리며 서로 격려했다. 우리 사회가 비록 부족하고 개선할 할 점이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소망과 비전, 사랑이 있는 사회라고 믿게 됐다. 그런데 21세기를 열게 된 2000년 내게 귀한 기회가 찾아왔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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