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유해 발굴단 자원 입대한 조한진 상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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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가리산 778. 일명 '벙커 고지'. 참나무가 빽빽한 능선에서 조한진(21) 상병은 50여년 전 스러져간 무명용사의 원혼을 캐고 있었다.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모두들 "대~한민국"을 외치지요. 저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분들이 바로 6.25 당시 목숨을 바친 선배들이라 생각합니다. 이름 없이 죽어간 분들의 유골을 수습할 때마다 그분들의 나라사랑이 느껴집니다."

조 상병은 무명용사의 유골 수습을 위해 육군 전사자 유해발굴단에 자원 입대했다. 충남대 고고학과를 다니던 그는 유해발굴단에서 근무했던 선배들로부터 얘기를 듣고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이 일을 통해 6.25를 체험하고 아픔을 겪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가리산은 6.25 당시 북한군이 남하한 길목. 조 상병은 벙커 주변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녹슨 실탄이 먼저 나왔다. 긴 것은 M1 소총탄이고, 짧은 것은 카빈 소총탄. 판초 우의가 보였다. 마른 낙엽처럼 잘게 부서진다.

전장에선 전사자의 유해를 판초로 덮는다. 시계도 발견된다. 바늘은 삭아 없어졌지만 자판은 선명하다. 이어 삭은 전투화. 호미로 흙을 걷어내고 귀얄로 털어내자 전투화 속엔 무명용사의 다리뼈가 들어있다. 조 상병은 유해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전쟁 당시 저와 같은 젊은이였을 겁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50년간 차가운 능선에 누워있으리라 상상이나 했을까요…. 전율이 몸을 감쌉니다. 죄스러운 느낌입니다."

군복도, 인식표도, 매장 기록도 없다. 유골은 작은 나무관에, 원혼은 태극기에 감싸인다. 유해는 DNA 검사를 위한 시료 채취 이후 화장한다. 서울 국립현충원 지하납골당에 안치된다.

가족을 찾게 되면 국립묘지 묘역에 비석을 세우고 정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유해발굴단은 2000년 전쟁 50주년을 맞아 육군이 그동안 방치해 왔던 유골 수습을 위해 만든 부대다. 장교 5명, 부사관 3명, 사병 17명의 초라한 규모다. 발굴단은 지난 6년 동안 1400여 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그중 51구의 신원을 확인했다. 미발굴 유해는 13만5000여 위로 추산된다.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하고 참나무 숲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분다. 병사들이 관을 안고 하산한다. 그나마 이날처럼 3구의 유해를 수습한 날은 발걸음이 가볍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글.사진=최정동 기자

◆ 미국에선='당신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미국 하와이에 있는 육군 중앙신원확인소(CILHI)의 모토다. 미국은 말 그대로 분쟁 과정에서 실종된 병사의 유해 발굴이라면 지구 끝까지 샅샅이 뒤진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1991년 소련이 무너지자마자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전화해 가장 먼저 "미군 유해 발굴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전 세계 미군 유해찾기를 위해 매년 1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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