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박봉·내부비리로 기강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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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2월 충북 중원군에서는 중앙경찰학교 순경반 학생 8백 여명이 국도를 점거, 『처우개선과 경찰체질 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로부터 3개월여 뒤인 지난 4일 동의대사태에 대해 부산시내 전경들은 부산시경에서 동료 6명의 희생을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집단 항의 시위를 벌였다.
국립경찰의 곪을 대로 곪은 내부 불만과 흔들리고 있는 조직체계를 보여주는 한 단면들이었다.
「정권의 시녀」라는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 속에 전국 13만 경찰은 인사·진급 등을 둘러싼 내부불만, 열악한 근무조건 등이 함께 얽혀 조직자체가 기우뚱대고 있는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를 받게됐다.

<시민 눈총 괴로워>
『연세대·서강대·이대 등 5월 들어 하루 한번 꼴인 학생들 시위에 대비하느라 벌써 2주째 집에 들어가 편한 잠 한번 못 잤다』는 서울 서대문경찰서 윤모경위(27).
『시위진압에 나갈 때마다 옷을 벗어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시민들의 경멸하는 듯한 시선을 받을 때마다 경찰을 택한 스스로가 미워진다』고 한숨짓는다.
경찰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상실은 조직에 대한 소속감과 사명감 결여로 이어지고 나아가서는 경찰관 모두를 더욱더 눈치주의와 보신·무사안일주의로 빠져들게 해 경찰조직은 활기를 잃은 채 표류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1주일에 80시간을 근무한다』는 서울강남경찰서 S파출소 박모순경(32).
고등학교 졸업 후 순경 초봉 19만 5백원에서 시작, 10여년 근속한 지금 손에 쥐어지는 29만9천5백원으론 네 식구 최저생계비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선배 경장이 20년 근속하고 받는 44만1천5백원이 어떤 때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게된다.
일반직 공무원들 휴일 즐겨가며 또박또박 주44시간만 채워도 봉급이 이보다는 나은데 2배 이상 힘들게 고생하고 받는 봉급엔 왠지 눈물이 난다고 한다.

<"충성심 생기겠나">
친구들이 시간외수당 운운할 땐 생소하기조차 하다는 박순경은 『죽지 못해 경찰 하는 마당에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나 시민에 대한 봉사의식이 생겨나겠느냐』고 반문한다.
『윗사람 눈치 따라 눈에 거슬리지 않게 적당 적당히 하고 주위에 가끔 손도 내밀게 마련』이라고 씁쓸해한다.
한 일선서 수사간부는 『형사들이 야간근무 배치 땐 감독자로부터 근무사실을 확인하는 사인을 받기 위해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다 오는 실정』이라고 실토하고 『아무런 근무의욕이 없는 상태에서 수백 명이 동원돼봐야 강력범 한 명 제대로 못 잡는 것은 당연하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지난 3월초 서울강남경찰서 형사계직원 20여명은 관내 개포동 구룡산 기슭 철거지역에 구청직원들과 함께 나갔다가 오물세례를 받았다.
구청직원들과 함께 무허가 철거를 지원하려다 오물을 뒤집어쓴 경찰들은 땅에 떨어진 위신은 고사하고 폭력경찰소리를 들어야하는 현실에 종일토록 허전하기만 했다.
구청소관인 철거에서부터 벌금미납자 소재파악수사, 벌금징수, 무허가 사설강습소나 양곡관리법위반자 단속 등에 이르기까지 경찰의 각종부처에 대한 협조·지원사항은 가뜩이나 과중한 업무를 더욱 무겁게 해 곧바로 민원불친절·날림수사 등으로 되돌아 오곤 하는 것이다.
직업에 대한 긍지상실, 열악한 근무에 대한 울분, 진급과 보수를 둘러싼 불만 등. 경찰들의 숱한 갈등은 지난달 경남창원에서 국회의원으로부터 경찰간부가 뺨을 맞았다고 주장, 4천여 명의 경찰이 집단사표를 제출한데서도 나타난다.
당시 이 같은 집단행동을 가리켜 일선경찰들은 『정말 울고 싶던 차에 뺨때린 격』이라고 평할 정도였다.

<「무조건 지시」불만>
지난해 5월 서울 대림동 S빌라 김모씨(58·여)로부터 강도신고를 받은 인근 파출소 김모순경은 답답한 마음 그지없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파출소가 비어 도저히 출동할 수가 없었어요. 학생들 시위로 모두 비상동원 된 상태였거든요』경찰이 현장출동을 못하고 애태우는 사이 범인들은 옆집에도 들어가 세든 김모양(21)을 폭행한 뒤 달아나 버렸다.
서울남부경찰서 이모경장(36)은 『업무를 보다말고 시위만 나면 동원, 각 일선 경찰서와 파출소직원들은 비상대기 체제에 들어가 모든 업무가 마비되는데 위에서는 범인을 빨리 잡으라고 독촉만 해 댄다』며 『여건은 개선해줄 생각 않고 무조건 지시만 내리는 경찰조직 자체에 회의를 느낀 적이 많다』고 했다.
경찰 조직체계가 흔들리는데는 일선경찰과 간부들 사이의 괴리도 큰 원인이 되고있다.
지난 8일 서울S경찰서에서는 경찰 간부가 일선경찰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경찰관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게 요정출입 등을 삼가고 뇌물을 받지 말라』는 내용의 교양교육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양교육을 받던 순경들 사이에서 『요정출입은 간부들이 도맡아하면서 뭘 그따위교육을 하느냐』는 수군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교육이 잠시 중단되고 간부와 일선경찰들 사이에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었다.
지난해 9월 고위간부들이 호적을 고쳐 나이를 속인데 대한 여론이 들끓자 치안 본부는 일선경찰 모두에게 호적을 떼어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일선경찰관들은 『나쁜 것은 고위간부들이 다하면서 멀쩡한 부하들만 일이 터질 때마다 들볶는 거냐』며 반발하기도 했었다.

<"부하들만 들볶아">
시민들의 안녕과 질서를 책임져야 할 경찰이 집단사표를 내고 점거시위를 벌이는 등 오히려 시민들을 불안하게 할 지경에 이른 경찰의 기강해이도 따지고 보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경찰조직의 단면을 보이는 것이다. 경찰을 아는 사람들은 『이대로 가다간 경찰이 정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민주경찰」로 거듭 태어나야 할 경찰은 과거와 같이 힘에 의한 강제로써, 공포에 의한 강요로써가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는 난제 앞의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체조직 내부의 비리와 갈등을 조속히 극복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선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많은 사람들은 지적하고 있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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