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정책 보좌관, 대책회의 거쳐 「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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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29선언을 노태우 대통령(당시 민정당 대표위원)이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니라 전두환 전대통령이 시켜서 한 것이란 『월간조선』보도에 대해 당시 실무작업에 참여했던 박철언 대통령 정책보좌관은 22일『사실과 다르며 노 대통령이 주도했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박 보좌관이 밝힌 6·29선언의 배경과 과정.『내가 노 대표로부터 6·29선언의 내용을 준비하도록 처음 지시 받은 것은 87년 3월말쯤이었다.
노 대통령은 3월 25일 청와대에서 민정당 당직자들과 함께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전 전대통령으로부터 개헌주도는 전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위임을 받고 있었다.
나는 당시 안기부장 특별 보좌역 이라는 공식 직함에도 불구, 당시 20여명의 정부 각 부처 엘리트관료들을 규합, 안기부 내에 연구팀을 만들어 은밀히 개인차원에서 노 대표를 돕고 있었다.
노 대표는 처음 나에게 개헌정국이 제대로 안 풀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직선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우리 팀은 직선제의 폐해를 들어 신중론을 폈다.
노 대표는 그해 6·10 전당대회에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면서 실질적으로 개헌정국을 주도하려 했는데 그때 6월 사태로 위기가 가속되자 직선제를 할 수밖에 없다는 최종결심을 한 것 같다.
노 대표는 직선제 주장자들을 전대통령이 만나도록 주선해 분위기 조성에 노력했으며 전대통령에게 김영삼씨를 만나도록 적극 권유했다.
내가 노 대표의 최종결심을 받아 6·29선언의 구상요지를 처음 들은 것은 6월 18일(목)이었다. 우리 팀은 지시를 받고 즉각 작성에 착수해 6월20일에 노 대표에게 첫 보고를 했으며 몇 가지 새로운 지침을 받았다. 그 뒤 22일 밤(월) 6·29선언의 전문 초안을 노 대표에게 보였으며 몇 대목 수정토록 지침을 받았다.
2차로 전문의 초안을 보고한 것은 6월 25일이었으며 나 외에는 일체의 배석자가 없었다. 그때 노 대표는 공정한 선거관리 대목을 포함시키도록 지시했으며 27일 6·29선언 내용을 최종 마무리짓고 일요일인 28일 최종문안을 복사, 50부를 이병기 당시 보좌역에게 주었으며 그 내용을 이 보좌역이 큰글자로 정서해 29일 오전 9시30분 노 대표가 발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 대표는 일요일인 22일 청와대로 가 전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는 김영삼씨와의 면담을 건의하고 당무협의를 한 것으로 안다. 이틀 뒤인 24일 노 대표는 다시 청와대에서 전 대통령을 만났는데 전-김영삼 회담의 결과를 논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이후 6월29일까지 노 대표가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난 사실이 없다.
두 분이 만났을 때 한 얘기는 두 사람밖에 모른다. 전 대통령이 당시 직선제와 김대중사면·복권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졌었는지 알 수 없지만 노 대표에게 지시나 건의를 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본다.
월간조선에 6월 20일에 전 대통령이 먼저 노 대표에게 제의했다는 설은 맞지 않다. 이미 노 대표는 18일 최종결심을 했고 그때 나에게 업무를 지시해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87년 6월 18∼20일 사이의 당시 신문을 보면 노 대표가 난국수습을 위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등의 말을 한 보도가 크게 나갔다. 또 노 대표와 전대통령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전 대통령의 장남인 재국씨가 했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실제 작업은 안기부의 우리팀 중 강재섭 의원(당시 검사)등3, 4명이 도맡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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