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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에 환수하겠다" 마사지업소 덮친 공무원의 수상한 행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 씨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위조 공무원증. 박 씨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프린트한 법무부 공무원증에 본인 사진을 붙인 후 코팅해 위조 공무원증을 만들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 국제범죄수사대 제공]

박 씨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위조 공무원증. 박 씨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프린트한 법무부 공무원증에 본인 사진을 붙인 후 코팅해 위조 공무원증을 만들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 국제범죄수사대 제공]

지난해 11월26일 서울 양천구 한 마사지 업소에 남성 3명이 들이닥쳤다. 남성들은 출입국 공무원증을 보여주며 불시 단속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매장을 돌아다니며 태국 여성들을 한명 한명 단속했다. 이들은 불법체류 신분의 태국 여성 5명을 그 자리에서 체포한다며 모든 짐을 챙겨 자신들이 타고 온 차에 태웠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이상해졌다. 태국 여성들을 태운 차가 향한 곳은 일산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이들은 여성들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수갑을 채워 강제 출국시키겠다”고 협박하고 “불법으로 번 돈은 국고에 환수하겠다”며 1080만원 상당의 현금과 귀금속을 자신들의 가방에 모두 담게 했다. 여성들은 오피스텔에 18시간가량 감금된 후 같은 날 오후 7시 30분쯤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남성들은 실제 출입국 공무원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박씨 일당은 양천구의 한 태국 마사지 가게에서 가짜 단속으로 태국 여성 5명을 그자리에서 체포한다며 일산 오피스텔로 데려갔다. [국제범죄수사대 제공]

박씨 일당은 양천구의 한 태국 마사지 가게에서 가짜 단속으로 태국 여성 5명을 그자리에서 체포한다며 일산 오피스텔로 데려갔다. [국제범죄수사대 제공]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 국제범죄수사 3대는 24일 위조한 공무원증으로 출입국 공무원을 사칭해 불법체류 태국 여성들을 협박해 현금을 빼앗은 후 강제로 출국시킨 박모(33)씨 등 5명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일당 5명 중 한 명은 박씨와 동거하는 태국 여성으로 10일 출입국사무소로 넘겨 16일에 강제추방됐다”며 “박씨 등 한국인 4명은 구속했다”고 밝혔다.

강제 추방된 공범 태국 여성 A씨는 박씨와 동거하는 사이다.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태국 여성 B씨가 일하던 양천구의 한 마사지 업소를 박씨에게 알렸다. B씨는 평소 A씨에게 전화로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게 힘들다고 말해왔다.
A씨에게 이야기를 들은 박 씨는 범행 장소로 해당 마사지 업소를 선택하고 범행을 준비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프린트한 법무부 공무원증에 본인 사진을 붙인 후 코팅해 위조 공무원증을 만들었다.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습득한 태국어로 된 자진 출국 안내문과 진술서도 준비했다.

박씨 일당은 태국 여성들을 허위 초청 방식으로 입국시켜 마사지업소에 취직시키는 출입국 브로커로, 한때는 이들을 고용하여 직접 불법 마사지업소를 운영하다 단속된 전력이 있다. 마사지업소에 취업한 태국 여성 대부분은 불법체류 신분이고 이들은 보통 급여를 현금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출입국기관에서는 이들을 어떤 절차를 거쳐 단속하는지도 파악했다.

업소를 단속할 때는 팀장·단속원·운전자로 역할을 구분하고 단속과정에서 “팀장님”이라고 부르는 등 치밀함도 보였다. 범행 중에 마사지 손님들이 들어오자 “출입국 불법체류자 단속 중입니다”라며 태연히 손님들을 돌려보내는 등 대범함도 보였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1일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간 불법 체류ㆍ취업 외국인 특별 자진 출국 기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간에 자진 출국하는 경우 입국 금지 불이익 조치를 당하지 않는다. 반면 해당 기간 적발된 불법체류자는 한 단계 상향된 입국 금지 제한 규정이 적용돼 최대 10년간 입국이 금지된다.

박 씨 일당이 "국고에 환수하겠다"며 태국 여성들에게 압수한 1080만원 상당의 현금과 귀금속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 국제범죄수사대 제공]

박 씨 일당이 "국고에 환수하겠다"며 태국 여성들에게 압수한 1080만원 상당의 현금과 귀금속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 국제범죄수사대 제공]

강제 출국이 돼 입국 금지가 될까 두려웠던 여성들은 박씨 일당의 모든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 박씨 일당은 빼앗은 돈으로 태국 여성 5명의 비행기 표도 구매했다. 태국 여성들은 자신들의 출국이 강제가 아닌 자진 출국 형태로 진행됐다 믿고 본국으로 향했다.

박씨 일당이 가짜 단속을 하던 날 당일 업소에 함께 있었던 마사지 업소 주인도 경찰 조사 때까지 법무부 단속으로만 알고 있었다. 불법 체류자를 고용한 업주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업소도 실제적인 피해를 본 것으로 보고 별도로 과태료 처분을 진행하지는 않았다”라며 “피의자들의 치밀함과 대범함에 비추어 그 이전에 추가 범행이 있을 것으로 보고 여죄 수사 중이다”고 밝혔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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