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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반정부 주도한 35세···트럼프 "임시대통령 인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베네수엘라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국회의장이 정권 퇴진운동을 주도하며 ‘임시 대통령’을 선포한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미주 우파 국가들이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

좌파 정권 퇴진 운동에 수만 명 결집 #부정선거·경기 악화로 쿠데타 발생 #현직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 선언 #대통령은 "미국 외교관 떠나라"며 반발

23일 밤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23일 밤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로이터·AP통신 등 외신은 23일(이하 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 현장 상황을 전했다. 우파 야권을 지지하는 수만 명의 군중은 수도 카라카스에서 국기를 흔들며 마두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시위대 선봉에 선 건 후안 과이도(35) 국회의장이다. 지난 5일 취임한 과의도 의장은  “재선거를 요청하는 군의 지원 속에 임시로 대통령을 기꺼이 맡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집회 직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의 눈이 우리나라로 쏠리고 있다”며 “베네수엘라는 오늘 거리에서 다시 태어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정권 퇴진 운동을 촉발한 건 부정선거 논란이다. 마두로는 작년 5월 치러진 대선에서 68%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정통성 시비에 시달렸다. 유력 야권 후보들이 가택연금, 수감 등으로 선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대선이 치러져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좌파 정부의 정책실패에 있다. 유엔은 지난해 6월 기준 베네수엘라인 230만명이 극심한 경제난과 의약품 부족 등으로 자국을 탈출해 콜롬비아, 에콰도르, 미국 등으로 떠났다고 밝혔다. 전체 인구(3280만명)의 7%에 달하는 규모다.

 국외에서는 지난해부터 이미 마두로를 새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나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미주 13개국은 작년 베네수엘라 대선을 공정하지 못한 부정선거라고 규정했다.

23일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헌법 축소본을 들고 시민들 앞에서 선언하고 있다. [EPA]

23일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헌법 축소본을 들고 시민들 앞에서 선언하고 있다. [EPA]

 이번 반정부 시위에서도 미주 우파 국가들은 야권의 정권 퇴진 운동을 속속 지지하고 있다. 마두로 대신 과이도 의장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 “베네수엘라 국회가 헌법을 발동해 마두로 대통령이 불법이라고 선언했고 따라서 대통령직은 공석”이라며 “과이도 의장을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나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복원을 압박하기 위해 미국의 경제력과 외교력을 최대한 계속해 사용할 것”이라며 “다른 서방 국가들도 동참해달라”는 의사를 밝혔다.

 EU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목소리가 무시될 수 없다”며 “자유롭고 신뢰할 만한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고 밝혔다. 루이스 알마그로 미주기구(OAS) 사무총장 역시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캐나다와 브라질, 칠레, 페루, 파라과이, 콜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 중남미 우파정부들도 임시 대통령 지지선언에 동참했다.

 하지만 마두로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마두로 대통령은 대통령궁 밖에 모인 수천명 규모 지지자를 상대로 연설하면서 “헌법에 따른 대통령으로서 제국주의 미국 정부와 정치ㆍ외교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며 “모든 미국 외교관이 떠날 수 있도록 72시간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친정부 지지자들 역시 붉은색 옷을 입고 맞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를 겨냥해 ‘반역자’, ‘매국노’라고 외치며 쿠데타 시도를 규탄했다. 국외에서도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는 나라들이 있다. 쿠바, 러시아, 볼리비아, 멕시코 등 좌파 정권들은 베네수엘라 현 대통령을 인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콘스탄틴 코사체프 러시아 상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발언과 미국 정부의 정책은 주권 국가에 대한 직접적이며 무분별한 간섭”이라고 비판했다.

 시위대 간 충돌은 격화하는 양상이다. AFP 통신은 현지 경찰과 시민단체를 인용해 전날 밤 시위 현장의 혼란 속에서 13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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