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 16년째 아파트 민원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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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입주자연합회 광주지부장인 한재용(왼쪽에서 셋째)씨가 광주시 남구 무등파크 아파트에서 주민들에게 관리비 내역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창환 기자

"아름다운 아파트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입주민들의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21일 광주시 동구 수기동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광주지부 사무실. 지부장 한재용(57)씨와 아파트부녀회장 10여 명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최근 지역 케이블 TV업체가 시청료를 2200원에서 6600원으로 세 배나 인상하자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16년째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 해결에 나서고 있는 한씨는 현직 공무원이다. 그는 농산물품질관리원 화순출장소장(6급)이다.

그가 아파트 민원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1년 6월 광주시 남구 봉선동 무등아파트에 입주하면서부터.

"당시 아파트 입주일이 분양공고 때보다 45일이 늦었어요. 입주민 회의에서 이를 부각해 주민들과 함께 건설사에 따졌습니다."

그는 1년여에 걸친 승강이 끝에 건설사로부터 가구당 100만원 정도인 1억3000만원을 받아냈다. 이를 계기로 아파트 자치회장으로 추대된 그는 부실공사 사례 40여 가지를 지적해 내 계단 난간을 바꾸고 단지 안에 나무를 더 심도록 했다.

한씨는 92년 2월 광주.전남 아파트연합회를 결성해 총무를 맡았다. 입주민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자치회 간 정보 공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실시공 등에 따른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밀려 들어왔다. 한씨는 원래대로 시공됐는지를 따져보기 위해 건설업체에 설계도면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듬해 초 광주YMCA.경실련과 함께 시의회에 행정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청원을 제기해 설계도면 열람권을 받아냈다. 이후 그는 광주.전남의 150여 곳 아파트 주민들이 부실공사 등에 따른 아파트 보수와 손해배상을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씨는 "보수비 등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500억원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파트 소독비.승강기 점검비.물탱크 청소비.화재보험료 등을 꼼꼼히 분석해 각종 용역비를 20% 이상 내리기도 했다. 그는 "아파트 단지 간 용역비를 비교 분석해 발표하고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면서 아파트 관리비의 거품이 빠졌다"고 했다.

공동 수도료.전기료 절감운동도 폈다. 광주시내 아파트 관리비는 2002년 이후 전국 7대 도시 평균의 70% 수준으로 자리했다. 또 현장조사를 통해 영구임대 아파트 관리비, 전남 나주.영광 등의 농촌지역 아파트 LPG 가격 등을 내리도록 유도해 일부 아파트는 가구당 매월 2만원 안팎의 부담을 줄였다.

이런 그를 주민들은 '아파트 민원 해결사'라 부른다. 아파트 자치회장들 사이에선 '아파트 박사'로 통한다.

"'공무원이 엉뚱한 일을 한다'며 주위의 핀잔과 협박도 셀 수 없이 받았어요." 그는 "주민의 불편을 해소하고 도움을 주는 일이라 생각해 굴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씨는 "앞으로는 농산물 직거래 등을 통해 도시와 농촌 주민 간 교류를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92년 6월부터 격월제로 '아파트연합회보'를 만들어 왔다.지금까지 86회째 간행했다. 50~120쪽 분량의 회보를 통해 한씨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아파트 운영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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