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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규제 2~3주 만에 졸속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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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21일 서울 방송통신대학교 영상강의실에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방향과 바람직한 자녀교육'에 대한 영상강의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부총리는 외고생들의 비교육적 사태도 함께 지적했다. [연합뉴스]

교육인적자원부가 '외국어고(외고) 입학제한 조치'를 불과 2~3주 만에 급하게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고 인가권을 가진 교육감과의 사전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입시제도를 바꾸려면 적어도 3년 전에 예고해야 한다. 수험생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교육인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21일 "외고 입학제한 조치는 이달 초 '공영형 혁신학교' 관련 간부회의에서 갑자기 결정된 사항"이라며 "공영형 학교 도입을 준비한 지난 1년간 외고에 대한 내부 검토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공영형 학교에)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외고에 대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외고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김진표 부총리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공영형 혁신학교와 외고를 같이 발표하면 학부모들의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러나 외고가 입시 과열의 핵심이 되는 등 '잘못된 정책'이라는 의견이 많아 이번 기회에 개선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영형 학교를 띄우기 위해 외고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 셈이다.

교육부는 19일 전국을 대상으로 학생을 뽑던 외고의 학생 선발을 2008학년도부터 광역자치단체(시.도)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3~4년간 평가를 해 입시 위주로 운영하는 외고를 일반고로 전환(인가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 졸속 추진=김 부총리는 지난해 7월 처음 공영형 혁신학교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혁신도시와 낙후지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올 2월에는 자립형 사립고 확대를 중단하고 5월까지 방안을 내겠다고 했다. 5월 17일에는 기자단과 워크숍도 했다. 이어 6월 초로 예정됐던 브리핑은 청와대 보고 일정을 이유로 두 차례 연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영형 학교와 외고 입시제한 연계 방안은 없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교육부는 특히"김 부총리가 일선 교육감과 사전에 개별적으로 접촉해 협조를 구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기도 김진춘 교육감은 "발표 당일 김 부총리가 전화로 제도 변경 사실을 알려와 학교선택권을 제한하면 자율권 침해소지가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강남지역 집값을 잡으려고 외고에 제재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원칙 무시한 횡포=당장 중 2년생이 고교에 들어가는 1년 전에 제도를 바꾼 것은 '군사정권' 때나 가능한 횡포라는 지적이다. 실제 1980년 7월 30일 전두환 신군부는 여름방학 기간 중 '본고사 폐지' 폭탄선언을 했다. 고 3생이 대상이었다. 곳곳에서 혼란이 벌어졌다. 당시 고 3이었던 김지수(45)씨는 "정치적인 고려가 없으면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이런 행정이 가능하겠느냐"며 "인천이 집인데 딸이 서울지역 외고를 가고 싶어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은 21일 성명을 통해 "교육부가 탁상공론으로 한탕주의식 정책을 발표해 전국의 학부모와 학생들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원칙을 무시한 입시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교총도 "평준화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해 수월성 교육을 하자는 외고의 설립 목적에도 역행하는 졸속 정책을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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