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고수 한마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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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어떻게 하면 많이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덜 손해볼까를 고민하면서 소심하게 투자합니다."

수익률 0.1~0.2%의 작은 차이에도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리는 냉정한 펀드 시장. 한국밸류자산운용 이채원(사진) 전무의 '겸손'은 의외다. 그러나 한 달에 200포인트나 빠진 최근의 급락장은 이 전무의 '소심한' 투자전략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보여줬다. 그가 운용하는 '한국밸류10년투자주식펀드'는 설정일(4월 18일) 이후 코스피 지수보다 9%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마이너스 5.85%. 원금을 까먹었으니 부끄러운 성적이지만,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가 14% 넘게 빠진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선방이 아닐 수 없다. 이 전무는 코스피지수가 39% 급락한 2000년에도 11%의 수익률을 내는 등 지난해까지 6년간 지수가 56% 오를 때 회사 자산을 435%나 불린 '전적'이 있다.

"주가 예측이 맞아본 적도 없고 주가지수를 보지도 않는다"는 이 전무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그는 "투자자금의 성격이 바뀐 만큼 펀드 매니저들의 전략도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거엔 주가가 급등할 때 '대박'을 노리는 '묻지마'투자자들의 전화가 폭주했지만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올 초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계속 갈아치울 때도 전화 한 통 없었습니다. 요즘 증시로 몰리는 돈은 과거의 단기 투기성 자금 대신 3년 이상 장기투자 자금이 대세입니다."

예전엔 단기 자금이 몰려 운용도 단기로 했어야 했다. 단기 수익률에 집착해 주가가 낮을 때 샀다 높을 때 파는 타이밍 전략이 대세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엔 자금의 성격이 달라진 만큼 멀리 내다보고 장기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가치주 발굴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기본이 탄탄한 가치주들은 주가가 빠질 때 크게 출렁이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론 고수익이라는 덤도 챙길 수 있지요." 그의 투자가 하락장에서 빛을 발하는 이유다. 이 전무가 장이 열리는 시간에도 기업탐방이나 애널리스트와 세미나를 하며 종목 찾기에 힘을 쏟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는 요즘 하락장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본다.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가치를 지녔지만 주가가 너무 많이 올라 사기 꺼려졌던 종목들을 싼 값에 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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