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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증시에 영문명 상장, 외국산 분유 총판 독점…중국 분유업체들의 처절한 생존기

중앙일보

입력

중국 현지에서 외면받고 있는 중국산 분유. [연합뉴스]

중국 현지에서 외면받고 있는 중국산 분유. [연합뉴스]

2008년 최소 6명이 숨지고, 30만 명의 영유아가 신장결석 등을 앓게 된 중국 멜라민 분유 파동은 중국 사회에 뿌리 깊은 상흔으로 남았다. 싼루(三鹿)·이리(伊利) 등 멜라민이 검출된 분유를 판매한 업체들은 폐업했고, 관련 업자들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엄벌을 받았다.

중국 멜라민 분유 파동 10년 후 지각 변동 #네슬레 등 외국기업 중국 시장 상위 차지 #외국산 분유 총판 독점 시도 등

그로부터 약 10년. 중국 분유 시장 상위 1~5위(시장점유율 기준)는 네슬레(스위스)‧다농(프랑스) 등 상당수 외국계 분유 업체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멜라민 분유 파동 이전에 중국멍니우유업유한공사, 중국항주비잉메이트 등 중국 업체가 분유 시장을 주름잡던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외국계 업체가 중국산 분유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제품 신뢰도를 내세워 사업을 확장한 덕분이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분유 업체가 놓였던 위기(멜라민 분유 파동)는 외국계 기업 입장에선 사업 확장의 기회였다”며 반면 “현재 중국 토종 분유 업체들은 ‘한번 떠난’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전했다.

지난 10년간 외국계 분유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무섭게 사업을 확장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네슬레·다농 등은 중국 외곽 지역에서 판촉에 나섰다. 그 결과 자사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며 “이후 이들 업체는 도심의 젊은 부부를 겨냥해 전자 상거래 광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언급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스위스계 네슬레의 중국 분유 시장점유율은 멜라민 분유 파동 직후인 2009년 9.5%에서 지난해 14.1%로 올라 1위를 기록했다. 2011년 중국 분유 시장에 진출한 프랑스계 다농(2위)의 시장점유율 역시 0.7%(2012년)에서 지난해 9.5%로 매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중국 분유 시장의 매출 상위 기업은 네슬·다농·페이·애보트·래킷벤키저 순이다. 3위(페이)를 제외하면 모두 외국계 기업이다. [블룸버그 캡처]

지난해 중국 분유 시장의 매출 상위 기업은 네슬·다농·페이·애보트·래킷벤키저 순이다. 3위(페이)를 제외하면 모두 외국계 기업이다. [블룸버그 캡처]

반면 2009년 1·2위 기업이던 중국멍니우유업유한공사와 중국 항주 비잉메이트의 시장점유율은 각 16.0%, 8.2%에서 지난해 5%, 1.7%로 쪼그라들었다.

중국 분유 업체들은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유아 두 명을 키우는 베이징 시민 첸지제는 “10년이 지났지만, 멜라민 분유 파동은 여전히 뇌리에 남았다”며 “국산 분유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불신을 드러냈다.

중국 시민들의 싸늘한 반응에 중국 분유 업체들은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해 영문으로 사명(社名)을 일시적으로 바꾸거나, 외국 분유 업체 제품의 국내 총판을 독점하는 식으로 기업·제품 이미지를 개선하고 있다.

중국 유명 분유 업체인 페이허가 대표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페이허는 멜라민 분유 파동 이후 ‘아메리칸 데이리(American Dairy)’란 영문 사명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고 전했다. 회사 이름을 아예 '미국산 유제품'으로 지은 것이다.

블룸버그는 "국내외서 ‘글로벌 기업’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였다”며 “2013년쯤 미국 증시서 상장 폐지한 페이허는 비상장기업 형태로 자국 사업을 재개했다”고 전했다.

이런 경영 전략을 내세운 페이허의 지난해 중국 분유 시장 점유율은 8.6%로 3위를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뉴질랜드계 애보트(4위·6.8%), 영국계 기업 레킷벤키저(5위·6.5%)가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시장 점유율 8위(2018년 기준)로 내려앉은 중국멍니우유업유한공사는 최근 고가 뉴질랜드산 우유인 ‘트룬수’의 국내 총판 계약을 맺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중국 분유 업체의 외국산 분유 강조는 생산지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페이허의 해외 브랜드인 ‘퍼무스’는 자사 분유 제품이 미국 위스콘신, 혹은 일본 훗카이도산이라고 강조했다”며 “정작 이 회사가 소유한 소들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농장에 있다”고 전했다. 퍼무스가 생산하는 분유가 미국·일본산이 맞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분유 시장의 수익성은 중국 정부의 한 자녀 정책 폐지(2015년), 중국의 세계 최저 모유 수유 비율(10%) 등에 힘입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로모니터인터내셔널은 “중국 분유 시장 규모가 올해 267억 달러(약 30조 원)에서 2023년 323억 달러(36조5000억 원)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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