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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1.08인구재앙막자] 사오정 시대 … '이모작' 준비하는 405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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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한 뒤 1년간 고문으로 있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도 막상 그만둔다고 하니 심한 충격이 오더군요." 김모(58)씨는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선택받은 사람이다. 김씨는 엔지니어로 시작해 외국계 기업에서 최고위직까지 지냈다. 노후를 어려움 없이 지낼 정도로 돈도 모았다. 그는 지금 새로운 일거리를 찾고 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기에는 앞으로 살 날이 너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대흥동 한국경영자총협회 회관. 김씨와 같이 새 직업을 찾는 구직자들의 소그룹 토론이 벌어졌다. 토론에는 김씨와 지난해 10월 말 정년퇴직한 오모(60)씨, 15년간 다국적 정보기술(IT)기업에 다니다 개인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한 최모(48)씨, 12년간 금융기관에 다니다 퇴직한 임모(46)씨 등이 참석했다. 경총의 전직지원 기관인 아웃플레이스먼트센터에 등록한 이들은 중장년의 전직과 '인생 이모작'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 인터넷만으로는 한계="사업체를 접은 뒤 구인.구직 사이트를 찾아 하루종일 검색해봤지만 쓸 만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두 번째로 지역의 알림방에 들어가 봤지만 주로 단순 일용직, 아르바이트였다."(최씨)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등록했더니 연락이 왔는데 대부분 다단계 업체나 정수기 판매 같은 부류였다.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것 같아 거절했다."(오씨)

참석자는 모두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활용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않았다. 김대중 경총 아웃플레이스먼트 팀장은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는 전체 구직정보의 20%에 불과해 충분치 않다. 주변의 인맥을 활용하고 직접 구인업체를 찾아다니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인맥을 활용하라="회사 다닐 때 술자리에도 많이 어울리고 인간관계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만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임씨)

"중소기업을 상대로 컨설팅을 하는 친구가 있어 취직을 부탁했더니 꽤 괜찮은 업체를 소개해줘 얘기가 오가는 중이다. 처음엔 취직 소리를 입밖에 내기도 어려웠다. 이제는 일자리를 구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최씨)

참석자들은 퇴직 후에야 인맥관리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전직 컨설팅을 하는 JM커리어 김수경 위원은 "누구의 소개를 받으면 기업들이 1차 검증을 거쳤다고 생각해 취업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며 "현직에 있을 때 인맥관리를 잘한 사람은 재취업이 쉽다"고 말했다.

◆ 인생 후반전 미리 준비해야="첫 직장이 정년을 보장하는 편이어서 자기 계발에 게을렀다.'노인이 되면 연금과 퇴직금 갖고 조용히 살면 되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지금은 자격증 한 개가 아쉽다."(최씨)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관리자를 오래 해 특별한 기술이 없다. 기타를 좋아해 지금도 아르바이트로 개인지도를 하고 있는데 '무리해서라도 음악공부를 할 걸'하는 후회가 든다. 직장을 그만둔 뒤에 계속 붙잡고 있을 기술.기능이 필요하다."(김씨)

참석자는 모두 현직에 있을 때 전직을 위한 준비를 충분히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전직컨설팅 업체 DBM코리아가 만 35세 이상 남성 퇴직자 54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준비한 뒤 퇴직을 결정했다는 응답은 41.2%였다. 갑작스럽게 퇴직했다는 응답이 57.9%로 더 많았다. 이른바 '사오정(45세 정년)'시대에도 많은 직장인은 준비 없이 퇴직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 특별취재팀=송상훈 팀장, 정철근.김정수.김영훈.권근영 사회부문 기자, 염태정.김원배 경제부문 기자, 김은하 탐사기획부문 기자, 조용철 사진부문 부장, 변선구 사진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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