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조의 꿈꾸는 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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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 구상회화에서 선구적 역할을 했던 고 박항섭화백의 10주기 추모전이 15일 호암갤러리(751-5557)에서 개막됐다. 오는 6월6일까지 계속될 이 추모전은 작년12월 홍종명·박창돈·장이석등 고인의 화우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했던 「박항섭을 생각하는 모임」이 마련한 것.
고인의 유족이 간직하고 있던 작품 60여점과 친지·화우 및 전국의 소장가들이 출품한 작품 1백여점 중에서 사실주의적 재현에 주력했던 50년대 초기작품을 뺀 나머지 60∼70년대 작품 1백20점을 내걸었다.
고박항섭화백은 1923년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 해주고보를 졸업한뒤 일본의 가와바타(천단) 미술학교에서 양화수업을 했으며 해방후에는 향리인 장연·해주일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해주미술학교 교원이 되어 후진을 양성하기도 했다.
휴전직후인 53년 가을 서울에서 재개된 제2회 국전에 작품 『채과원』을 첫출품, 입선한후 해마다 국전에서 입·특선을 거듭하다 61년 마침내 국전추천작가가 되어 화단에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졌다. 이무렵 그는 국전외에도 「대한미협전」「창작미협전」등의 민전조직에 주도적으로 참여, 한국구상회화의 정착과 재흥에 크게 기여했고 서라벌예대등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고박항섭은 남한에서 활동을 재개한 50년대초만해도 객관적 사실주의 화풍을 고수하면서 명상과 서정의 내면성이 두드러진 그림을 발표했으나 이봉상·박고석·최영림등과 함께 모더니즘계열의 추상회화 열풍에 대항, 새로운 구상주의 신념을 다짐하기 위해 「구상전」이란 새단체를 출범시킨 6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비사실적이며 반추상적인 자유형상작업으로 화풍을 변화시켜 나갔다.
특히 70년을 전후해서는 전체적으로 「어두움」과 「가라앉음」의 통어된 분위기 색조로 지배되던 화면이 한결 밝아지면서 예민하고도 선명한 흑갈색 세선들로 대상을 윤곽짓는 독특한 표상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회색에 가까운 무채색을 즐겨 썼던 그는 말년에 남긴 한 수필을 통해 『색이란 유채색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그림에 반드시 여러 색깔이 들어가야 한다는 법도 없다. 내 그림에는 얼핏보아서는 모를 무궁한 색감이 있다. 회색조의 단순한 색 속에서 나는 끝없는 신비를 꿈꾼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작활동만을 위해 정든 대학강단을 떠나는 등 결단의 삶을 실천하던 고박항섭화백은 1979년3월29일 한밤중 제작에 몰두하다 캔버스 앞에서 쓰러짐으로써 스스로 필생의 신앙으로 우러르던 화업을 위해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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