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회중앙미술대전] 자신만의 현실 해석 … 한국 화단의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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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에 희망이 보인다.' 20일 오전 제28회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 25명의 작품을 놓고 오랜 시간 논의를 거듭한 심사위원들은 입을 모아 젊은 작가의 힘과 능력을 칭찬했다. 김홍희 심사위원장은 "전체적으로 참신하고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았다"고 즐거워했다. 지난해부터 선정작가 제도를 도입해 작품 제작비를 지원하며 새로운 실험 정신을 북돋은 결과다.

가장 눈에 띄는 경향은 작가마다 독특한 시사성과 창의성이다. 작업실에 웅크린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현실을 나름대로 받아들여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 작가 정신이 뚜렷이 드러났다.

대상을 받은 이희명씨의 '떠드는 정원'은 소수 약자의 상징이던 식물을 거꾸로 강자로 부각해 세상의 상식을 뒤집은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점토의 생생한 느낌을 미술로 풀어낸 창조력도 좋은 평가를 얻었다. 동식물을 접목해 만화 같은 환상세계를 창출한 점, 엽기적이면서도 동화적인 작품세계가 매우 인상적이었는 것이 심사평이다. '내 것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젊은 작가들의 요즘 작업 흐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우수상 이광호 작 ‘인터뷰(Inter-View)’ 연작, 캔버스에 유채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작가는 등장인물을 만나고 영상을 뜨고 그림을 그렸다. 작업실로 찾아온 모델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밑그림을 옮긴 뒤 채색하고 DVD 영상, 모델 소품 등을 함께 전시한다.

우수상 김윤호 작 ‘플래시(Flashes)’, 비디오 스틸.DVD 프로젝션 사진을 찍는다. 이왕 왔으니 사진이나 한 장, 남는 건 사진뿐. 이 세상에 사진으로 고정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사물을 인식하는 오감 가운데 으뜸으로 등극한 ‘보기’, 이미지에 대한 절대 의식을 환기시킨다.

평면 작업이 두드러진 점도 고무적이었다. 지난 몇 년 새 화단에 뚜렷한 '회화의 복귀' 구심점이 젊은 작가였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우수상을 받은 이광호씨 경우는 전통 장르인 초상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관련되는 오브제를 페인팅과 접목해 초상화 장르를 확장한 점이 훌륭했다. 평소 잘 아는 이들을 그림에 등장시켜 그들 생각과 감정을 피부나 옷의 질감 같은 촉각적인 회화적 방법으로 푼 점이 독창적이었다.

김윤호씨는 사진의 스틸 이미지와 동영상을 결합한 기술적 방법론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의 매끈한 결합 위에 우리가 사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부분이 돋보였다. 심사위원들로부터 '내용과 방법론 모두 뛰어난 작가'라는 평을 들었다. 김씨는 2002년 제1회 다음작가상을 받았고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국제 미술계로 발돋움하는 작가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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