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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조기유학돋보기] 미국만 가면 영어 저절로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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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럼 엄마, 빨리 미국 가자."

주위 사람들로부터, 또 언론매체에서 주워들은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미국=교육천국'이라고 단정 지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민가방 6개만 달랑 들고 미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1년 반 후 우리는 혹독한 지옥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훈련병들처럼 지친 모습으로, 미국 교육에 대한 '달콤한'환상이 깨어진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공립교육에 대한 환상 중 가장 빨리 깨진 것은 숙제와 공부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워낙 지역별로 차이가 많기 때문에 정말 숙제가 없거나 조금만 내주는 곳도 있다.

반면 우리 아이가 다닌 초등학교처럼 4학년부터 숙제도 많이 내주고 시험도 자주 보는 학교도 있다. 더구나 한국과 달리 과목당 숙제를 세 번 안 해 가면 그 과목은 낙제시켜버리는 학교 규칙 때문에 처음에 영어를 잘못했던 우리 아이들은 매일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게다가 5학년이었던 큰 아이는 미국 아이들과 똑같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스펠링, 독해 시험 등을 일주일에 2~3개씩 봐야 해 매일 공부에 쫓겨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는 모든 일을 젖혀두고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는 데에만 매달려야 했고, 주위의 충고를 받아들여 미국인 개인교사를 구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만 가면 영어는 단기간 안에 저절로 익힐 줄 알았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사교육비를 1년 이상 쏟아 부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부모가 느긋하게 아이가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세월 동안 학습 부진은 차치하고라도, 아이가 바보 취급을 당하며 받는 마음의 상처까지 감내할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오늘도 아이들을 공부로부터 해방시키고 쉽게 영어를 배우게 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조기유학을 떠나는 부모와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경험자로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떤 고난도 이겨내겠다는 각오를 함께 가지고 가지 않는다면 그 길은 가시밭길이 될 수 있다"고.

김희경 '죽도 밥도 안 된 조기유학' 저자.브레인컴퍼니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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