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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신이 되려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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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대훈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국장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언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사회적 사건과 현상 속에 담긴 팩트(fact·사실)와 가치를 따지고 포용과 배척, 수정과 변형을 거쳐 대중이 실체를 판단하도록 틀(프레임)을 제시한다. 저널리즘에선 ‘실재(實在)의 사회적 재구성(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이라고 한다. 신문과 방송은 제각기 이념과 지향점에 따라 다양한 프레임을 그려낼 수 있다. 그게 미디어의 다양성이다.

행정 조직·물적 자원 독점한 정부 #법·제도의 힘을 빌려 신처럼 군림 #소득주도성장과 권력 비리 문제 #왜곡 프레임과 가짜뉴스 탓 인식 #획일적 틀과 무균 사회는 위험해 #절대적 무오류의 덫 벗어나야

소득주도성장을 평가하는 시각은 진보든 보수든 언론사마다 다른 게 정상이다. 함께 잘 살자는 사회주의적 이상만 보면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념에 매달린 설익은 추진과 초라한 실적에 주목하면 실망 프레임이 타당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경제 실패 프레임이 강력하게 작동한다”고 말해 프레임 논쟁을 일으켰다. 최저임금을 팍팍 올려 국민의 소득·소비 증가와 일자리 창출로 선순환시키려는 진정성을 일부에서 ‘실패 과장 프레임’으로 왜곡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누군가는 ‘보수 이념동맹의 오염된 보도’라고 거들었다. 그렇다면 2008년 광우병 파동을 몰고 온 ‘미친 소 프레임’은 지금 뭐라고 할지 묻고 싶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말까지 54조원이 일자리 만들기에 투입됐다. 결과는 최악의 고용 참사와 빈부 격차다. 54조원이라면 집권 1년 반(78주) 동안 매주 약 7000억원씩 쏟아부었다는 얘기인데, 기가 찰 노릇이다. 그저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달라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 위협받는 상황을 비관적 프레임에 담는 게 비정상인가. 틀에 분칠한다고 추하고 어두운 현실이 장미빛 풍경화로 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가던 길 그대로 가겠다는 자신감을 보면 이 정부에 오류란 단어는 없다.

가짜뉴스 문제도 무오류의 덫에 걸려있다. 문 대통령은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정부 정책을 부당하게 또는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고 폄훼하는 것”을 가짜뉴스라고 규정했다. ‘김태우·신재민 폭로 사건’ 보도를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김태우는 ‘희대의 농간을 부린 비위 행위자’이고, 신재민은 ‘자기가 경험한 좁은 세계 속의 일을 문제 삼은’ 청년으로 간단히 정리됐다. 어제 조국 민정수석은 “민간인 사찰 등 불법 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선언했다. 그들의 폭로와 의혹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한, 그나마 한 줌밖에 남지 않은 비판적 언론에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무언의 압력이 느껴진다.

고대훈칼럼

고대훈칼럼

예전에 언론계에 ‘3실(室) 기자’란 말이 있었다. 출근부터 퇴근 때까지 담당 출입처의 기자실-화장실-취침실 3곳만 오가는 게으른 기자를 빗댄 표현이다. 정부 부처에는 경제 실패 프레임과 가짜뉴스의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소통·홍보 전담 창구를 마련해 성과를 홍보하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정부발 프레임’과 ‘진짜뉴스’만 받아쓰도록 하겠다는 의도라면 두렵다. 있지도 않은 권력의 비리와 일탈을 찾겠다고 헛심 쓰지 말고 3실 기자로 길들여지라는 얘기이니 말이다.

이런 절대적 무오류의 편집증은 어디서 오는 걸까. ‘신이 된 정부’(김광웅, 『좋은 정부』)라는 도발적 개념이 흥미롭다. 그러고 보니 이 정부는 유독 복음적이다. 촛불정신, 정의, 공정, 소명 등 손으로 잡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없는 추상적 단어를 끊임없이 주입해 대중을 세뇌한다. 속세의 고통은 ‘전환기의 진통’이니 인내하라고 한다. 저자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정부가 신이 되나.
“정부는 거대한 행정 조직과 물적 자원을 독점하고 법과 제도의 힘을 빌려 합법적 폭력과 벌을 가하며 신처럼 군림한다. 또 복음주의를 전파하고, 연약한 인간은 기복(祈福) 하며 정부에 의지하니 신이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
정부의 신에게 복종과 숭배만 해야 하나.
“스스로 신의 경지에 있다고 착각하면 자신의 무오류를 정당화한다. 위선과 거짓이 내재한 사악한 신이 있듯이 신이 된 정부라고 항상 옳고 신망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마틴 루터가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반기를 든 것처럼 정부를 비판할 자유와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진실이 바지를 입기도 전에 거짓말은 지구의 저편까지 간다”고 불평한 사람이 영국 총리 처칠이다. 어느 사회나 시대든 진의를 몰라주는 반항적 프레임과 가짜뉴스가 정부를 괴롭혔다. 설령 의도된 프레임 왜곡과 가짜뉴스라고 치자. 신이 되려는 정부에 걸맞으려면 저항의 여론을 이해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절대적 무오류의 환상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게 맞다. 획일적 틀과 무균을 강요받는 사회는 위험하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