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후성심근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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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건장한 30대광부가 탄광매몰사고에서 구츨되었다. 외견상 열로 다친데는 없었다.
그러냐 그후부터 가슴이 아프고 숨이 차며 어지러운 증세를 보여 강원도 지방병원에 입원해있다가 심장병증세로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검사결과 심장의 근육(심근)이 정상보다 3배가량 두꺼워져 (비후) 심근의 수축력은 필요이상으로 강했다. 반면에 심장의 내강, 즉 혈액이 들어찰 수 있는 용적이 정상의 2분의1정도로 줄어들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심장은 근육으로 된 펌프다.
정상적으로는 심장의 4개방 가운데 가장 힘센 펌프인 좌심실의 심근두께는 약1cm이며 그 내강의 확장기 용적은 약1백20cc, 수축기 용적은 50cc정도로 한번 수축할 때 약70cc의 피를 대동맥으로 분출하여 전신순환을 하게한다.
그러나 심근의 두께가 1.5cm 이상으로 두꺼워지면 심근의 상대적 허혈(두꺼운 심근의 산소소요량이 공급량보다 많아지는 상태)로 협심증과 감별이 어려운 흉통·호흡곤란·부정맥 등이 나타난다.
이것이 극한적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급격히 악화된다.
또 너무 강력한 심실의 수축력 때문에 심장판막이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게 된다. 이렬 때는 보통 판막증과 감별진단이 어렵다.
이 「비후성 심근증」이 한국인에게는 서양사람에 비해 발생빈도가 훨씬 높다. 그리고 대개는 유전적인 경우다.
대부분의 환자에게는 베타수용기 차단제·칼슘길항제등의 약물치료로 치유가 가능하나 심한 경우에는 심근의 가장 두꺼운 부분에 부분적 절제수술을 하고 터진 판막을 인공판막으로 갈아넣어야 한다.
이 광부의 경우에는 심장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태여서 우리 흉부외과팀은 개심수술을 단행했다.
수술을 끝내고 환자가 회복할 단계에 이르자 진짜 문제가 생겼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더라도 검사비·수술비·인공판막값등 5백만원을 부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가난한 광부가 아무리 땅을 파더라도 이렇게 큰 목돈을 한꺼번에 마련할 도리가 없었다. 이때문에 견재처리를 받아야 하는데 주치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즉 탄광매몰사고가 환자에게 질병의 원인이 됐다는 진단이 있어야 했다.
나는 의사의 양심을 걸고 탄광주인의 의견과는 정반대로 진단서를 발부했다.
『본 환자는 심신의 극한적 스트레스상황에서 기존의 병이 급격히 악화되었기에 산재처리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이 환자는 산재보험의혜택으로 병을 고쳐 현재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열심히 일하던중 땅속에 파묻혀 「죽었다 살아난」 사람에게 이 정도의 관용은 베풀어야 우리 「복지국가 대한민국」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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