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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역대 최다 표차 부결…야당은 메이 총리 불신임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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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5일(현지시간) 브렉시트 합의안이 찬성 202표, 반대 432표로 부결된 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런던 하원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브렉시트 합의안이 찬성 202표, 반대 432표로 부결된 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런던 하원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이 대혼란에 빠졌다. 테리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합의안이 의정 사상 최대 표차로 부결됐기 때문이다. 집권 보수당 내에서 반대표가 쏟아지면서 메이 총리의 국정 장악력은 최하로 떨어졌다. 이를 놓칠세라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즉각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3월 29일로 날은 받아놨는데, 브렉시트 방안은 찾기 어렵고, 정권 차지하기 싸움을 시작하는 형국이다.

영국 하원 찬성 202 반대 432 #메이, 21일까지 플랜B 제시해야 #최악 땐 ‘노딜 브렉시트’ 우려 #영국도 EU도 경제 대재앙

브렉시트를 추진할 정부가 힘을 잃은 데다 대안도 마땅치 않아 갈수록 파열음이 커질 전망인 게 더 큰 문제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런 협상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수 있다.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 경제에 악재인 데다 한국도 영국과의 교역에서 관세가 부활되는 등 파장이 우려된다. 논란 끝에 제2 국민투표가 실시돼 브렉시트가 취소되는 것도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영국 하원이 15일(현지시간) 실시한 표결에서 정부의 브렉시트 합의안은 의원 639명 중 반대 432표로 부결됐다. 찬성은 202표로 격차가 230표나 됐다. 현직 총리의 정책이 부결된 표차로는 영국에 의회 민주주의가 도입된 이후 최대다. 1924년 노동당 소수 정부가 166표 차로 패배한 적이 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1979년 89표 차로 집권당의 정책이 부결된 적이 있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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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결 직전까지 메이 총리는 의원들에게 “우리 모두의 정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투표다. 향후 수십 년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선택에서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명령한 국민의 목소리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호소했다. 각료들도 나서 메이의 협상안을 부결시키면 노 딜 브렉시트로 가거나 ‘노 브렉시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표결 결과가 참패로 드러나자 메이는 보수당 내에서 총리 불신임안을 논의하는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코빈 대표는 의회 차원에서 총리 불신임안을 표결하자는 안까지 제출했다.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하고 14일 이내에 내각에 대한 신임안이 하원에서 의결되지 않으면 조기 총선이 열리게 된다.

그렇지만 보수당과 연정을 통해 과반 의석을 유지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은 코빈의 집권을 강력 반대해 총리 불신임안은 통과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 정치권은 EU를 압박해 재협상을 하려 하겠지만, EU는 재협상에 부정적이다.

영국 정치권이 표류하면 노 딜 브렉시트라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오는 21일까지 메이 총리가 ‘플랜 B’를 제시해야 하나 특별한 안이 나올 도리가 없다. 일부 EU 회원국들은 노 딜 브렉시트에 대비한 비상 법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도 오는 23일 영국 정부와 피해를 줄일 방안을 논의한다.

다만 EU도 노 딜 브렉시트가 되면 경제적 재앙을 맞게 된다. 양측 간 사람과 자본의 이동 제한은 물론, 관세 부활로 유럽 전역이 마비 상태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EU가 브렉시트 일자를 7월까지 늦출 수 있다고 밝힌  이유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영국이 일방적으로 브렉시트를 취소하는 게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영국 정치권이 국민투표로 가결된 브렉시트를 자신들의 정치력으로 되돌릴 역량은 없어 보인다. 일부 의원들은 브렉시트를 철회할 것인지, 메이의 협상안에 찬성하는지를 국민에게 물어보자는 국민투표안을 제안했다.

정치권이 선거전략으로 꺼내든 브렉시트는 영국을 분열과 혼돈 속으로 밀어넣었다. 노 딜 브렉시트 우려만 커진 현재의 상황은 영국을 넘어 EU와 전 세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메이가 물러나도, 코빈이 새 총리가 돼도 묘수는 찾기 어렵다. 노딜을 막고 재협상이나 브렉시트 철회를 선택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다. 정치권이 내지르고 수습하지 못해 국가 전체를 위기로 빠뜨리는 표본을 영국은 보여주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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