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슈] 일본 또 무너진 투자 귀재의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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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일본 경제의 구태를 깨려는 개혁자에서 불법 내부자 거래 용의자로.

내부정보를 이용해 거액의 이익을 챙긴 혐의로 이달 초 구속된 일본의 무라카미 요시아키(村上世彰.46.사진) M&A컨설팅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손 대는 투자마다 '대박'을 터트려 '신의 손'으로도 불렸던 그는 하루 아침에 범죄자 신세로 추락했다. 그의 M&A컨설팅은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투자수익을 올리는 일종의 사모펀드. 설립자 이름을 따 무라카미 펀드라고 한다.

◆ 초등학생 때 주식 투자=1959년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난 무라카미는 머리가 좋아 신동으로 불렸다. 무역상이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시절부터 신문 경제면을 탐독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아버지에게서 평생 받을 용돈이란 명목으로 100만엔을 타 삿포로맥주 주식 2000주를 사들이기도 했다.

도쿄대 법대 졸업 후 통산성(현 경제산업성)에 들어갔지만 그에게 행정은 비효율 그 자체였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관료는 법을 잘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 다음은 시장에 맡겨라"다.

◆ 새 바람 일으키긴 했으나=그는 99년 통산성을 뛰쳐나와 '주주 행동주의'의 기치 아래 M&A컨설팅을 설립했다. 그 후 60개가 넘는 회사에 투자해 50억엔에 불과했던 펀드를 4000억엔 규모로 키웠다.

그가 내세운 원칙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에 대한 이익배분. 이를 토대로 그는 일본에 주주를 중시하는 경영체제를 확립하겠다고 공언했다. 예컨대 그는 2001년 의류업체 도쿄스타일의 주식을 매수한 다음 철저한 경영쇄신 작업을 벌였다. 기존 경영자들이 반대하면 주주총회에서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켰다.

◆ '롯폰기힐즈족'의 몰락=무라카미는 2004년 미디어 사업에 관심이 많던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 라이브도어 사장에게 닛폰방송 매수를 권했다. 호리에는 곧 닛폰방송 인수 작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닛폰방송의 주가는 한달 새 50% 이상 급등했다. 무라카미는 이런 내부정보를 이용해 닛폰방송 주식을 사들여 100억엔 이상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그러다 올 초 호리에가 주가조작과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되면서 무라카미의 내부자거래도 들통난 것.

M&A컨설팅과 라이브도어 등 서구식 주주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신흥 기업들은 주로 도쿄 롯폰기(六本木)의 고층빌딩 '롯폰기힐즈'에 입주해 있다. 그래서 그 경영자들은 '롯폰기힐즈 족(族)'으로 불린다. 이들은 한때 일본 경제의 구태를 깨부술 개혁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호리에에 이어 무라카미마저 구속되자 '롯폰기힐즈 족'의 몰락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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