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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악횡행 시민 모두의 책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집 나와라 뚝딱, 법 나와라 뚝딱」, 요즈음 들어 또다시 도깨비의 요술방망이 소리가 요란스럽다. 아파트값이 올라가니까 허허벌판에 30만, 40만명이 거주할 도시가 불쑥 솟아나고 경찰관 6명이 화염병 세례로 사망하니까 화염병 금지법이 부랴부랴 입법될 참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사후약방문」이란 조상들의 말은 괜한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명희생이 있고 나서야 대통령이 비장한 표정으로 긴급담화를 발표하고 매일 텔레비전 화면과 신문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정치지도자들의 표정은 자못 침통하기까지 하다. 정치지도자들끼리 민주화를 실현하고 5공비리를 청산하고 부의 공정한 분배를 실현하자고 약속하고 협상하고 입씨름하는 새를 참지못해 학생과 노동자들, 부동산투기꾼들이 일을 벌인것이다.
일제시대의 유물인 머리띠를 당시의 출정군인처럼 질끈 동여맨 노동자·학생들이 회사기물을 부수고 대학교수의 머리를 삭발하는 동안, 거리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을 가진 젊은이들의 충돌이 서로간의 적개심의 골을 깊이 파는 동안 정치권의 사색당파들은 그에 대한 정책을 마련할 여유가 없이 바빴다.
동해시의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4당이 모두 선거법위반으로 두 차례나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당하기에 바빴고 후보매수소동을 벌이기에 바빴다.
매수한 측은 처음엔 모략이라고 잡아떼고 매수당한 쪽은 그런 파렴치한 후보를 내세운데 대한 부끄러움은 덮어둔 채 마치 희생자인 것처럼 동정을 끌어 모으려 하는가 하면 나머지 두 정당들은 그러한 부정이 가져오는 정치에 대한 불신을 우려하기보단 상대방이 입게된 상처에 더 관심을 보이기에 여유가 없었다. 일이 있고 나서야 전정협의회다, 영수회담 마련이다 대책마련에 또 부산하기만 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십수년간 반복해온 이런 도식을 모두 정부의 정책, 정치인이나 거리의 젊은이들 책임으로만 돌릴수는 없게됐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은 거울앞에 서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은 아닌가. 그런 정치인들이 나설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런 학생·노동자들이 있도록 만들어준 토양이 바로 시민들 자신이 아닌가 생각해 볼때다.
학생들의 폭력은 물론 자제돼야하고 규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폭력의 근원은 그들 스스로가 터득한것이라기 보단 그들이 자라며 교육받으면서 그 전세대로부터, 통치권을 휘두른 군사정권의 물리적 폭력에서부터, 야당세력내의 치고받는 무분별한 폭력등에서부터 지난30년가까이 배운것이 아닌가. 바로 그들의 몸에 밴것은 우리가 숨쉬고 살며 키워온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최근 어느 외국기자는 한국의 교육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야만인을 만들고 있다』는 한 대학교수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마치 컴퓨터에 입력하듯이 단편적인 지식을 주입시켜 사고와 창조적 능력이 없는 로봇처럼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여론은 교육정책의 부재라고 쉽게 정부쪽에 책임을 돌린다.
이뿐이 아니다. 각종 사회범죄를 두고 정치력의 부재, 공권력의 부재를 탓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범죄의 뿌리는 정치력이나 공권력의 부재에서 찾기보다는 사회의 밑바탕, 시민계층에서 찾는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시민계층의 죄과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즈음 걸핏하면 사회문제가 되는 강력사건, 부녀자의 인신매매, 시위장의 폭력, 부동산 투기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시민계층의 무절제한 향락산업에 대한 수요가 없고 야만을 키우는 교육이 없었고 부에 대한 과다한 탐욕이 없다면 그러한 사회악이 무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적 성장을 잘못 이해하여 자만심과 불손에 젖어 자제와 도덕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사회악의 바탕을 스스로 키워가는 자해행위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의 말로는 인간은 모든 적대자, 심지어는 철천지원수라 하더라도 상대방에게서 싫든 좋든 자기 자신의 한 부분을 보게된다고 한다. 이 말은 개인 하나하나 뿐 아니라 그들이 이루고있는 사회·국가에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추방하자는 폭력이나 사회악에 모두가 공범자라는 얘기다.
이러한 문제를 풀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고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결국은 정치라고 한다. 화염병으로 사고가 난 뒤에 금지법을 만들어내고 아파트값이 오른다고 순식간에 몇몇 관리의 머리에서 신도시계획이 입안되고 강력범이 설친다고 신문에 날때마다 민생치안을 강화하라고 호령하는 것이 정치는 아니다.
필요하니까 만든다는 단순논리도 성립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법률이고 도시고 간에 자연스런 민생과 흐름을 같이 하는 것이지 제도나 법률, 계획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정치에 기대하는 것은 일이 터지고 나서야 법석대며 마련한 사후약방문에 따른 도깨비방망이식의 안정이나 편안함, 거창함이 아니다. 미리미리 준비되고 오랜 검토끝에 마련된, 호도책이 아닌 근본처방이다. 이는 당장의 집권자만이 아니고 모든 정치인에 대한 기대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1920년대에 『서양의 몰락』이란 베스트 셀러를 써낸 서구의 한 학자는 이상적인 정치인이란 『타고난 정치인은 인간·현실·사물을 꿰뚫고있는 사람이다. 거창한 말도 하지않는다. 다만 진실만을 추구하면서 실현 가능성을 재빨리 파악하는 안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주위에 그런 인물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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