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전용 임대아파트|2천억 넘는 재원이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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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92년까지 2백만채의 집을 더 지어 도시주택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의욕은 서울중산층을 위한 일산·분당 두 「신도시」건설계획외에 대도시 「달동네」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도 추진되고 있다. 특히 서울의 경우 2백12개 지구를 「불량주택재개발지구」로 지정, 재개발·현지개량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중이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1일부터 재개발사업때는 세입자용 영구임대아파트건설을 의무화해 대상지역 가옥주·세입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세입자들의 이주대책요구로 사업을 추진하려는 가옥주측과 유혈충돌까지 빚고 사업이 진행을 못보고 있는 곳도 많아 서울시의 이 같은 방침변경은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서울시내 재개발사업현황과 세입자아파트건립 의무화에 따른 문제점을 추적했다.
◇기본계획=시울시가 지난달 25일 개정, 1일부터 시행한 불량주택 재개발지침 개정안은 세입자들에게도 독립된 아파트입주를 보장함으로써 재개발지구의 세입자 분쟁을 해소키 위한 것이다.
서울시는 개정지침에서 ▲전체재개발 건립가구수의 60%이상을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국민주택규모로 짓고 ▲조합원 외에 세입자분까지 짓도록 의무화했다.
세입자분은 모두 영구임대주택으로 건립하되 그 비용은 시 예산으로 지원키로 했다.
건립방식은 지구내 국·공유지에 조합이 지은 뒤 서울시가 시가로 매입, 세입자에게 임대하거나 서울시가 직접 지어 임대하는 방안 중 조합의사에 따라 택일된다.
세입자용 임대주택은 전용면적 7∼10평으로 제한되며 보증금 1백만∼2백만원, 월세3만∼4만원정도로 임대한다는 방침.
◇건립재원=이에 따라 앞으로 세입자용 임대아파트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할 곳은 재개발사업이 착수되지 않은 80곳으로 면적 1백35만여평에 철거대상 주택수는 3만5천6백82개동.
조합원(가옥주)과 세입자의 비율이 보통 1대 1∼1.2대 1정도인 실정에 비추어 이들 재개발 대상지역 세입자수는 3만5천∼4만2천가구 정도로 추산된다.
가구당 아파트평수를 평균 8.5평으로 계산하면 전체 세입자 입주에 필요한 아파트면적은 30만평이 된다. 서울시는 이를 짓기 위해 서울시 1년 예산 전체의 10%가 넘는 줄잡아 2천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이를 확보할 마땅한 재원이 없는 실정.
더욱이 이들 비용은 사업 인가신청이 있을 경우 그 내용에 따라 계산, 집행이 가능한 특수목적 사업비여서 정기예산으로 확보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80개 대상지구에 대한 전반적인 사업계획·추진진도를 조사, 정기예산에 일부를 반영한 뒤 부족액은 추경예산으로 확보한다는 방침이지만 재원확보엔 어려움이 예상된다.
◇파급영향=서울시의 방침 발표 후 이미 사업시행인가가나 철거가 진행중인 지역 세입자들이 설계변경을 해서라도 임대주택을 건립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86년 10월 사업시행인가가 나 사업을 추진중인 동소문동지역 강남선세입자 대책위원은 『현행 방1칸 분양은 기본생존권마저 보장할 수 없다』며 『앞으로 재개발사업시행이 될 지역과 마찬가지로 영구임대아파트입주권을 주어야할 것 아니냐』고 요구했다.
지난해 11월 유혈충돌사태까지 빚었던 사당2동도 86년 10월부터 철거가 시작되었지만 지금까지 7백여가구의 세입자가 남아있고 이들에 대한 보상문제를 놓고 조합측과 세입자들간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 지역·세입자들은 『종전의 방1칸 분양권(속칭 딱지)만으로는 생존권보장이 될 수 없다』며 『생업·생활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노후·불량 아파트 재건축지역에도 이 같은 세입자 보상에 따른 형평문제가 새로운 분쟁거리로 떠오를 조짐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로 현재 재건축 사업을 추진중인 마포아파트의 경우 세입자대책위는 『불량주택 재개발지역 세입자들에 대한 서울시대책과 마찬가지로 가옥주들이 자신들에게도 당연히 분양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 김인식 건설관리국장은 『재개발지역 세입자에 대한 영구임대아파트 분양권은 정부의 저소득층 서민 주택난 해소를 의한 40만 가구건립계획의 일환이며 따라서 앞으로 다른 지역 세입자들에게도 이 같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지만 이 같은 부작용을 우려한 가옥주들의 셋방 놓기 기피현상 확산으로 셋방 또는 전셋방 품귀현상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지적도 있다.
◇전대우려=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영구임대아파트를 보장받는 것 자체는 매력적일 수도 있으나 철거∼재입주까지의 2∼3년 동안을 지낼 곳이 확보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가옥주로부터 빼낸 보증금만으로는 도저히 이사비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철거가 되면 곧바로 임대권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될 것』이라는 걱정.
재개발을 앞둔 행당2동 317 하왕2의 1지구 세입자 이성렬씨 (55·노동)는 『5식구가 보증금 4백만원에 방2칸을 빌려 전세를 살고있다』며 『임대아파트에서 살게 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이는 나중 일이고 우선은 철거되면 보증금으로는 서울시내에서 임시로 살 곳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철거지역 보증금 자체가 워낙 싸기 때문에 더 싼값의 셋방을 찾기가 어려운데다, 특히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거주지주변에서 노점·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실정이어서 철거는 곧 생업의 단절을 불러 하루하루의 생계에 급급한 세입자들에게는 자칫 「그림의 떡」이 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경우 단독주택보다 관리비가 많이 들어 세입자들의 현지정착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관리유지비 대책과 직업안정대책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제정갑·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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