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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정은 방중…북·중 ‘과거 회귀’ 오판하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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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제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그 배경과 영향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그의 이번 네 번째 방중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구체적으로 검토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에 앞서 북·중 간 이견 조율을 위한 방문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세 차례에 걸친 김정은의 지난해 방중도 남북 또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성사됐었다.

중, 북핵을 대미 협상에 쓰면 안 돼 #정부, 중·일 관계 개선에도 힘써야

북한으로서는 자기 뒤에 중국이 버티고 있다는 걸 과시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이려 할 게 분명하다. 트럼프 행정부와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도 여차하면 북한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나쁠 게 없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의 만남은 공통 이익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걱정되는 건 두 지도자가 현 상황을 잘못 읽고 오판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중 하나는 미국이 일방적인 대북제재와 압박을 지속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대목이다. 이는 미국 대신 중국과 잘해보겠다는 이야기란 시각도 있지만 일각에선 핵무장의 길로 돌아가겠다는 압박이란 분석도 나온다. 행여 북한이 중국의 힘을 믿고 과거로 복귀하려 한다면 너무나 큰 오판이다.

김정은은 또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신년사에서 밝혔었다. 한반도 평화 협상에 중국을 끌어들이겠다는 뜻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와 발맞춰 제 역할을 한다면야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진정한 비핵화는 외면한 채 그저 대북 제재만 풀기 위한 북한의 작전이라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중국도 북핵 카드를 다른 곳에 악용하려 해선 안 된다. 미·중 간의 격렬한 무역전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막 시작된 대미 협상에서 북한, 나아가 북핵 문제를 이용하려 한다면 이는 중국이 공언해온 책임 있는 대국이 아니다.

지난해 11월까지의 북·중 무역 규모는 전년보다 53%나 줄었다고 한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확실히 동참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지난해 말에는 중국인 사업가가 북한산 해산물을 밀수했다 적발되기도 했다. 고질적인 북·중 간 뒷거래가 없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니 중국은 대북 제재가 확실히 이뤄지도록 철저히 동참하고 단속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북한 비핵화, 나아가 동북아 안정의 지름길이다.

우리 정부는 역으로 두터워진 북·중 간 밀월 관계를 활용할 길을 찾아야 한다. 지난 정권에선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 지렛대론’이 나올 정도로 한·중 간의 관계가 좋은 시기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제 도입 문제로 나빠진 한·중 관계가 그 때만큼이나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북핵은 우리가 남북 관계에만 올인한다고 풀릴 사안이 아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북한에 영향력이 큰 중국과 북쪽 경제개발에 향후 큰 역할을 할 수있는 일본과의 관계 회복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