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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 '퍽'처럼 올해 근심 걱정 시원하게 날리세요"

중앙일보

입력

3일 오후 국내 유일의 여자 아이스하키팀인 수원시청 실업팀 소속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3일 오후 국내 유일의 여자 아이스하키팀인 수원시청 실업팀 소속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빙상서 흘린 구슬땀 한파 잊어

3일 낮 12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탑동 아이스하우스. 수원시청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새해 첫 훈련이 한창이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때 북한 선수들과 단일팀을 이뤄 ‘평화의 상징’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던 선수들이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지한 모습이었다. 공격과 수비가 빠르게 전개되는 종목답게 선수들의 움직임이 날렵하다. “샤악 샤악.” 두껍고 견고한 스케이트 날이 빙상을 미끄러진다. “딱!” 스틱을 맞은 퍽이 골대 그물을 뒤흔들었다.

이날 아이스하키팀은 공격 훈련에 집중했다. 패스받아 득점 찬스를 높이는 전술이나 상대 골키퍼와 1대 1 상황에서 퍽을 다루는 브레이크 어웨이(break away) 등을 관중석에서 볼 수 있었다. “퍽!” 간혹 골대를 빗나간 퍽이 관중석을 보호하는 투명창에 부딪혔다. 김도윤 여자 아이스하키팀 감독은 “공격적인 팀으로 전환하기 위한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7~8위 순위 결정전 남북 단일팀 대 스웨덴 경기. 경기를 마친 남북 선수들이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7~8위 순위 결정전 남북 단일팀 대 스웨덴 경기. 경기를 마친 남북 선수들이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열악한 인프라 극복하려 고군분투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지난달 20일 창단한 수원시청 실업팀이 유일하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리그전을 치를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한쪽에서는 이 팀을 ‘시청 홍보용’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대회 출전기회를 늘리고, 좋은 성적을 보여줌으로써 이런 우려 섞인 비난을 잠재우겠다는 계획이다. 이 카드로 오는 6월 열리는 ‘남자 중학교 아이스하키 리그’ 출전을 꺼냈다.

10대일지라도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으로 다져져 체력이 웬만한 성인 남성 못지않다고 한다. 독일·핀란드와 같은 유럽에서도 여자 실업팀 대 남자 중등부팀 간의 연습경기는 일반적이라는 게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설명이다. 이 협회의 신수진 사무처장은 “아이스하키가 국기인 캐나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마찬가지”라며 “여자 실업팀과 주니어(남자 중학교) 간 경기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이나 동기부여 면에서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전용 연습장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선수들이 요즘 이를 악문 이유다.

곡절 끝 이룬 실업팀 창단의 의미

평창 올림픽 폐회 이후 하키팀의 창단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난해 1월 염태영 수원시장은 국내 첫 여자 실업팀 창단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남북 단일팀이라는 평창의 평화적 의미를 계승·발전시킬 수 있도록 아이스하키를 지원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당시 야당 시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저조한 관심 탓에 적자운영이 불 보듯 뻔해 결국 시 곳간에 재정부담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외 원정경기 등을 고려하면 한해 3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도 추산됐다.

지난해 염태영 수원시장(가운데)이 수원시청 여자아이스하키 팀 창단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염태영 수원시장(가운데)이 수원시청 여자아이스하키 팀 창단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수원시는 세밀하게 창단 추진계획을 세우고 시의회를 설득해 필요한 예산도 확보했다. 기존 국가대표 선수에게 합류 의사를 타진, 마침내 지난달 창단식을 가졌다. ‘평창에 모인 국민적 관심이 실업팀이나 대학팀 창단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남북 단일팀 골리 신소정 선수(현재 은퇴)의 염원이 이뤄진 순간이다.

기해년, 새역사 쓸 준비하는 하키팀


실업팀의 탄생으로 체육계에서는 한국 동계스포츠의 고질적 약점인 선수부족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업팀 입단이라는 목표로 선수 육성시스템이 보다 탄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성인 선수들은 생계 벌이와 운동을 병행해야 했다. 이규선 선수가 17년간 국가대표로 뛰면서 편의점과 음식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갔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등록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는 초등부 337명, 중등부 59명, 고등부 5명, 대학부 0명이다. 신수진 사무처장은 “지난해 1월보다 대학부를 제외한 초·중·고등부 선수들이 늘었다”며 “초등에서 실업팀까지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수원시청 하키팀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라고 말했다. 

김도윤 감독은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기대를 갖고 지켜봐 달라”며 “빙상을 빠르게 가르는 퍽처럼 올 한해 시민들의 근심, 걱정도 날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수원=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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