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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정신과 3곳, 의사 안전장치 아예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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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일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생전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에 헌신해 온 고인은 지난달 31일 진료 도중 피의자 박모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임 교수의 유족들은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동료 의사들이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2019.1.2/뉴스1

2일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생전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에 헌신해 온 고인은 지난달 31일 진료 도중 피의자 박모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임 교수의 유족들은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동료 의사들이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2019.1.2/뉴스1

경기도 정신과의원 윤모(36·여) 원장은 지난해 중순 정신질환 환자에게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했다. 그랬더니 그 환자가 "퇴원하면 너부터 죽일 거다"고 위협했다. 윤 원장은 "상태가 좋지 않아 진단한 건데,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다. 여성 의사는 더 얕잡아 본다. 윤 원장은 충격이 너무 커 병원을 그만뒀다. 윤 원장은 "상담하다 갑자기 뺨을 맞은 적도 있다”며 “동네의원은 간호사밖에 없고, 진료실에 환자와 둘만 있다 보니 비상벨 설치 외에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전국 주요 병원 20곳 조사해보니 #모두 갖춘 곳은 서울대병원뿐 #안전장치 의무화 ‘임세원법’ 추진 #박능후 장관도 “예방책 만들 것”

서울 용산구 노만희 신경정신과 원장은 지난해 5월 노인 환자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들었다. 수면제를 처방한 다음날 환자가 방문해 다짜고짜 반말로 "당신이 처방한 약 먹고 한잠도 못 잤다. 니가 의사냐, 가만두지 않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 후 진료실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경찰을 불렀더니 "병원 잘 되나 보자. 망하게 하겠다"며 쌍욕을 쏟아냈다. 각목으로 진료실 유리창을 박살 낸 환자도 있다. 노 원장은 "환자가 폭력을 행사해도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누가 그들을 돌보겠느냐'는 생각에 이해해왔다"면서 "이번 같은 끔찍한 일을 보고는 누가 위험을 감수하겠느냐"고 말했다.

환자의 흉기에 찔려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정신과 진료실 폭력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의료진들은 "환자의 특성 때문이라고 이해하지만 환자가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며 두려움을 표한다. 특히 다른 진료과는 간호사나 보호자가 동반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신과는 '의사-환자'만 20분 이상 상담한다. 다른 사람이 있으면 환자가 말을 안 하기 때문이다.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의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피의자 박씨(30)가 2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2019.1.2/뉴스1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의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피의자 박씨(30)가 2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2019.1.2/뉴스1

 이러다 보니 의료진의 두려움은 상당하다. 2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 앞. 복도에 안전요원 한 명이 배치돼 있다. 접수대엔 간호사 2명 있고 정신과 교수 네 명이 진료 중이다. 진료실에 별도의 대피공간이나 뒷문이 없다. 다만 진료실 문을 잠글 수 없게 돼 있다. 한 간호사는 “가끔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 부리는 환자가 있다. 병 때문이라고 이해하지만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안전요원을 진료실 쪽으로 더 가까이 배치할 예정이다.

 환자의 폭력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병원이 자구책으로 진료실에 대피 공간이나 뒷문을 두거나 비상벨을 설치하고 전담 안전요원을 배치한다.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강북삼성병원에는 대피 공간이 있었지만 의사가 간호사를 대피시키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중앙일보가 2일 전국 주요 대학병원 20곳의 실태를 조사했다. 뒷문,비상벨,안전요원(전담) 세 가지를 다 갖춘 데는 서울대병원이 유일하다. 삼성서울·신촌세브란스·서울성모·중앙대·경희대 등 17곳에는 대피용 공간이나 뒷문이 설치돼 있지 않다. 전담 보안요원은 삼성서울·서울성모·경희대 등 4곳만 두고 있다. 나머지는 비상벨을 누르면 다른 곳의 보안요원이 달려오는 식이다. 하지만 강북삼성병원 사건에서 보듯 사건이 순식간에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전담요원이 절실하다. 충북대·충남대·강원대 등 3곳은 비상벨마저도 없다.

고 임세원 교수 추모, SNS서 확산   (서울=연합뉴스) SNS서 확산하고 있는 故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원작자 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 2019.1.2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고 임세원 교수 추모, SNS서 확산 (서울=연합뉴스) SNS서 확산하고 있는 故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원작자 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 2019.1.2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동네의원은 이런 게 거의 다 없다. 노만희 원장은 "가스총이라도 구비해야 할 지경"이라며 "정신과의원 비상벨과 경찰지구대를 연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과의학회(이사장 권준수 서울대병원 교수)는 뒷문 등의 안전장치를 두는 법률(일명 임세원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2일 성명서를 내고 “2017년 5월 제대로 된 입원 시스템과 지역사회의 돌봄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환자를 치료 사각지대로 내모는 쪽으로 정신보건법이 개정됐다”고 지적했다. 홍정익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진료실 뒷문 등의 실태를 파악하고 진료 환경 안전 가아드라인을 만드는 등 정신과 진료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임 교수의 빈소를 찾아 재발 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박 장관은 “의료기관 내 폭행은 정신과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며, 진료과별로 예방책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처벌 강화는 국회에 맡기고, 미리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임세원 교수 빈소 향하는 박능후 장관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오후 외래 진료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2019.1.2   yato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임세원 교수 빈소 향하는 박능후 장관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오후 외래 진료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2019.1.2 yatoy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신성식·이에스더·김태호 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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