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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안은 채 평온 되찾은 북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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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중공당총서기의 사망과 장례식으로 팽팽한 긴잠감이 감돌던 중국 정정은 수도 북경에서는 일단 평온을 되찾았지만 22일 오후 서안에서 수만명의 추도군중과 경찰당국이 충돌해 1백3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차량 10대와 가옥 20여채가 불탔으며 북경대를 중심으로 한 전국 대학생대표들이 「전국단결학련」결성과 전국적인 수업거부를 추진하고 있는 등 평온과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특히 10일 후인 5월4일은 중국판 3·1운동인 「5·4운동」7O주년 기념일로서 북경대를 중심으로 한 각 대학이 대규모 기념행사를 계획하고 있어 일단 불꽃은 가라앉았지만 불씨는 여전히 타고 있는 셈이다.
「후야오방」(호요방) 장례식당일 대학생을 주축으로 20만명이라는 엄청난 인파가 모였으나 구심적 지도부가 없어 조직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국학련」이 결성된다면 상당한 조직력과 행동력을 갖출 가능성이 있다.
평온을 되찾은 것 같은 북경도 사실은 불안속의 고요를 맞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중공당이 호요방의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고 「자오쓰양」(조자양) 총서기의 조사를통해 호를 높이 평가했다고는 하지만 학생들이 요구했던 87년 1월 호의 갑작스런 실각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호에 대한 당의 최종평가가 유보된 것으로 해석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당정지도부는 이번 학생시위에 대한 대응방법을 놓고 양론이 있는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는데다 원로보수파를 중심으로 당국의 대응이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경의 관측통들은 호요방의 직계로 한때 호요방의 후계자로까지 지목됐으나 「변신」했던 「후치리」(호계립) 정치국 상무위원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하느냐하는 것이 학생운동의 방향을 결정짓는 한 요소로 보고 있다.
호요방의 장례식이 거행되던 22일 20만명의 학생·시민 시위대와 1만여명의 군경이 대치하는 등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던 북경 천안문 광장은 장례식이 끝난 22일 오후부터시위대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서 일단 평온을 되찾았다.
장례식이 끝난 22일 오후부터 24일 오전 현재 천안문광장에 위치한 「인민영웅기념비」 에는 호요방의 대형 초상화와 갖가지 조화가 여전히 놓여 있고 1천여명의 학생들이 기념비를 중심으로 침묵시위를 계속하고 있으나 그 열기와 긴장은 이미 큰 고비를 넘겼다.
일요일인 23일 천안문광장에는 맑은 날씨와 따뜻한 햇볕속에 평소 휴일과 큰 차없는 1만여명의 관광·나들이객들이 한가로운 모습을 보였다.
시위대들이 점거했던 천안문광장은 청소부들의 일손이 바쁘고 청소가 끝난 지역에는 살수차가 동원돼 물까지 뿌리고 있다.
장례식전날인 21일 오후10시30분부터 천안문에서 연좌중이던 시위대가 공산당본부 등 권부의 핵심기관에 있는 중남해까지 이동 시위를 하는 바람에 인도건 차도건 최대폭 1백20m의 서장안가가 시위대로 완전 점거됐었으나 22일 오후부터는 말끔히 청소가 돼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중남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신화문안쪽에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대형표어가 행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호의 추도식은 중국당국이 인민대회당에서 외견상 성대히 거행한 「관제식」과 바로 인접한 천안문 광장에서 당국의 경고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2O만명이라는 학생·민중이「자발적」으로 거행한 것에서 여실히 증명된 것처럼 이중성과 모순을 노출하고 있다.
당과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계층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민주화·자유화 및 지식인들에 대한 대우개선, 그리고 보도의 자유 (자유언론)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
22일 천안문 시위현장에서 만난 청화대의 한 학생지도자는 『정치개혁은 경제개혁과 동시에 진행돼야 하며, 그 핵심은 민주·자유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혼란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날 시위대 주변에 서 있던 운전기사 서모씨 (40)는 『우리같은 일반시민들은 누가 집권하든, 물러나든 큰 관심이 없고 엄청난 인플레에 가장 큰 불만을 느낀다』고 경제문제를 강조했다.
또 중남해 신화문 시위군중속에서 만난 자칭 「간부급 공무원」은 『나도 공산당원이지만당의 정책에 불만이 있다. 더 빠른 개방·개혁이 필요하며 노인들이 명실공히 은퇴함으로써젊고 유능한 사람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계층이든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고위지도층 및 그 가족들에 대한 부정부패와 특권의식이며 이들에 대한 재산 (해외포함)을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계층에 관계없이 이들은 나름대로의 불만을 가슴에 품고 있었으며 호의 사망을 계기로 분출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한꺼번에 분출한 이들의 불만이 일단 진정된 듯 하지만 재폭발의 가능성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북경=박병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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