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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약진"·"부패 척결"피킷 물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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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후야오방」 중공 당 총서기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장례식장인 인민대회당 밖에는 2만 여명의 시위학생들이 경비에 나선 군인들을 마주보고 구호를 외치는 등 시위를 벌였다.
장례식 직전 등소평 등 중국 지도층의 입장이 끝나고 이날 오전8시부터 실시했던 천안문광장 앞 출입 통제가 물리면서 학생·시민 10여만명이 몰려들어 호의 장례식을 구경했으며 많은 군중들이 TV와 라디오 등을 통해 장례식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날 장례식 참석자는 4천여명.
○…천안문의 시위는 엄척난 인파가 몰려 있지만 규모에 비해 소란스럽지 않고 구호를 외치기는 했으나 침묵시위의 성격이 짙었다.
학생들은 붉은기에 노란 글씨로 된「대학교 명」과 호의 초상화 및「민주약진」「민주자유만세」「매스컴은 진실을 말하라」「중국론」「부패척결」「탐관오리 척결」등 갖가지 구호가 적힌 현수막과 피킷 수백개를 흔들면서 갖가지 구호를 함께 외치고 있다.
22일 오전 불과 10여m거리를 두고 경찰과 대치한 학생들의 구호 중에는「반 독재」「반 관료주의」등도 있다.

<공산당가 부르며 행진>
○…이날 오전 7시30분쯤에는 무장 경찰들이 연좌중인 학생들 사이로 들어가 대열을 분리하려 시도했으나 학생들의 야유를 받고 곧 철수하기도 했다.
이때 신 3개 조항을 둘러싼 학생 대표들과 당국간의 협상이 사실상 결렬된 것으로 전해지자 연좌 중이던 학생들이 공산당가인「인터내셔널」을 부르며 인민대회당으로 전진, 한때 일측즉발의 상황까지 갔으나 학생 대표들이 핸드마이크를 통해 자제를 호소하고 뒤로 물러나 원위치로 돌아갈 것을 호소하자이들 시위대는 아무런 이의 없이 뒤로 후퇴하는 등 직접적 충돌을 회피하려는 자세들을 보이고 있다.
학생 시위대가 장례식이 거행되는 인민대회당으로 진출, 경찰과의 거리가 불과 10여m사이로 좁혀지고 학생 선발대와 경찰들이 접근되자 인민대회당 부근에 있던 경찰 증원대가 신속히 도착해 2, 3중의 사람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우리는 조직력이 없다">
○…시위대들은 외국 기자들의 취재에 적극 협조하고 있으며 본사 취재팀이 한국어를 하자 중국 과학원 연구소(대학원)에 다닌다는 정모씨(28)가『남조선 기잡니까? 나는 조선족입니다』라며 접근하기도 했다. 북경정법대의 경우『중화 인민공화국 헌법(35조) 언론·출판·집회·시위자유를 보장한다. (37조) 중국 공민은 인신의 자유를 갖는다』라고 쓴 대형 피킷을 앞세워 주목을 끌기도 했다.
중남해 입구인 신화문에서 만난 한 청화대 학생은 본 취재팀에게 자진 접근해 어디에서 왔는지 물은 뒤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우리의 목적은 민주·자유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혼란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당신들은 당국의 경고 때문에 온건한 시위로 돌아선 것이 아니냐』고 묻자『아니다. 우리는 조직력이 없다』고 답했다.
○…시위학생들은 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천안문 광장 혁명 영웅비에 꽃다발을 헌정했으며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저명한 작가인「라오 구이」는 호를 찬양하고 학생들의 호에 대한 찬양을 지지하는 내용을 현수막에 직접 혈서로 써 내걸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군중들은 박수와 함께 함성으로 이들을 격려했으며 현수막에 쓰인 구호를 함께 외쳤다.

<연도 시민들 폭죽 환영>
○…대부분이 학생들인 시위대가 아파트 단지나 상점가를 지날때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만원을 이룬 버스승객들도 이들에게 박수를 치며 격려했고 일부 시민들은 폭죽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시민은 『고맙다. 우리는 학생들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날 북경대에는『5·4운동 정신을 계승하자』『우리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피를 흘려야만 한다』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지난 78년 대자보기간 반체제 활동을 했던「렌 완딩」은 22일 2천여명의 시위대를 향한 연설에서『인민은 준법체제의 등장을 기원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대자보 기간(북경의 봄)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사는『우리의 지도자(등소평)는 늙었다. 그는 미쳤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경 국제 무역사무소의 한 노동자는『연사들이 말하는 것은 모든 인민이 말하고 싶은 것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자보 내용도 갖가지>
○…다음은 북경시위 및 대자보에 나타난 구호 등이다.
▲민주주의 만세, 자유만세, 인민만세, 애국은 죄가 아니다.
▲부패를 척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다.
▲폭력은 물러가라.
▲민주주의 정신은 죽지 않았다.
▲중국의 정치생활은 경제생활보다 더 비참하다.
▲우리의 의식은 전보다 더 높아졌으나 정부가 우리의 견해를 표명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시위대 주장 수용할 듯>
○…서방관측통들은 호의 장례식이 끝났지만 이번 시위의결과로 중국 지도부의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개혁파건 보수파건 이번 사태로 입장이 유리해지기보다는 양측이 이번 시외에 나타난 시위대들의 주장을 수용, 현재보다 민주화를 어느 정도 허용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북경=박병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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