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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으려 줄서던 제일병원, 55년 만에 폐원 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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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진료 중단을 공지한 제일병원의 홈페이지 안내문.

진료 중단을 공지한 제일병원의 홈페이지 안내문.

출산 전문 병원인 서울 중구 제일병원이 개원 55년 만에 폐원 위기를 맞고 있다. 제일병원은 28일 환자들에게 “병원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진료 및 검사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불가능하오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린다”며 “전원 의뢰서 및 제증명 서류가 필요하신 고객님께서는 내원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병원 홈페이지에도 같은 내용의 안내문을 게시했다. 지난달 입원실과 분만실을 폐쇄한 데 이어 외래진료까지 중단한다고 공식화한 것이다.

병원 “진료·검진 중단” 문자 #저출산·노사갈등에 경영난

병원 측의 문자를 받은 환자들은 진료기록을 떼거나 병원을 옮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출산 관련 카페에선 “28일 충무로 제일병원 진료 안 한다고 문자 왔다. 정밀검사 일주일 앞두고 무슨 일이냐” “냉동 보관 중인 난자는 어떻게 하나”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제일병원은 오랜 기간 경영난에 시달려 왔다. 제일병원의 분만 건수는  2012년 6808명에서 지난해 4202명으로 38% 감소했다. 의료계에선 병원 측이 ‘저출산 쓰나미’를 견디기 힘들었고, 대처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저출산으로 분만 건수가 급감하는데도 1970~80년대처럼 난임이나 산후조리원 분야로 눈을 돌리지 않고 분만 위주의 운영을 계속한 점도 경영난을 가속화했다고 본다.

여기에 경영진과 노조의 갈등이 더해지며 상황은 더 악화했다. 지난 6월에는 노조가 임금 삭감을 거부하며 전면파업을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간호사들이 대거 휴직하거나 사직했다. 병원장도 공석 상태다. 병원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나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제일병원 소속 일반 직원은 물론 의료진에게도 임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경영 정상화 기대감이 꺾이면서 직원들과 의료진은 대거 퇴사하고 있다. 최근 퇴사한 제일병원 관계자는 “올해 안에 인수 협상 등에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며 “많은 직원이 이미 그만뒀거나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 앞날이 불투명한 가운데 미래를 담보할 수 없기에 병원을 떠나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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