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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통도로 차단기 설치하면 어린이 보호구역 해제?…구청-주민 갈등 증폭

중앙일보

입력

부산 남구 LG메트로시티 출입구에 차량 차단기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이은지 기자

부산 남구 LG메트로시티 출입구에 차량 차단기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이은지 기자

부산 최대의 아파트 단지인 남구 용호동 LG메트로시티 출입구에 차량 차단기 설치를 두고 입주민과 구청이 갈등을 빚고 있다. LG메트로시티는 7374가구가 입주해있다. 대지 면적은 32만5000㎡(약 10만평)로 아파트 내 왕복 4차로 도로가 관통한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주민 75%가 찬성을 했다는 이유로 아파트 출입구에 차단기 설치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이에 부산 남구청은 아파트 내 어린이 보호구역을 해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LG메트로시티 내에는 유치원 2개. 초등학교 2개가 있어 어린이 보호구역과 신호등이 운용되고 있다.

남구청 “차단기 설치하면 사유지…나랏돈 들여서 어린이 보호구역 운용할 이유 없어” #LG메트로시티 입주자대표회의 “초등학생 안전 위협받아…사유지여도 해제하면 안돼” #해제 권한 가진 부산경찰청 “구청과 주민 갈등 심해 상황 지켜보고 해제 여부 결정”

부산 남구청 한미희 교통시설팀장은 30일 중앙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LG메트로시티를 관통하는 도로는 공용도로 기능을 해 왔는데 차단기가 설치되면 사유지로 바뀌게 된다”며 “사유지에 나랏돈으로 어린이 보호구역과 신호등을 운용할 이유가 없다”고 어린이 보호구역 해제 이유를 밝혔다. 남구청은 2002년 LG메트로시티 단지 내 분포초등학교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1억 400만원을 투입해 교통표지판 설치, 횡단보도 도색 등을 했다. 남구청은 LG메트로시티를 경유하는 마을버스 배차도 없애겠다는 입장이다.
한 팀장은 “LG메트로시티를 관통하는 왕복 4차로 인해 주변 차량정체 분산 효과가 컸다”며“LG메트로시티 내 초등학교에는 입주민이 아닌 자녀도 다니는데 이들 학부모는 자녀를 데리러 올 때 일일이 방문증을 끊어야 한다. 차단기를 설치하면 인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어린이 보호구역이 해제된다는 소식을 접한 입주민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입주민 이모(38)씨는“평일 대낮에 차들이 시속 80㎞ 속도를 내면서 내달리는데 어린이 보호구역마저 해제되면 아이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는다”며 “입주자대표회의가 차량 차단기 설치 찬반 설문조사를 할 때 어린이 보호구역이 해제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를 알았다면 차단기 설치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LG메트로시티아파트 내 도로에 불법 주정차 차량이 즐비해 있다. 이은지 기자

지난 21일 LG메트로시티아파트 내 도로에 불법 주정차 차량이 즐비해 있다. 이은지 기자

입주자대표회의는 남구청이 주민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LG메트로시티 유정기 입주자대표회장은 “차단기가 설치되더라도 초등학교는 여전히 있는데 어린이  보호구역을 해제하는 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남구청이 차단기 설치를 막으려고 주민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꼴”이라고 하소연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LG메트로시티 관통 도로를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탓에 도로 파손이 심각하고, 불법 주정차로 몸살을 앓고 있어 차량 차단기 설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유 회장은 “구청에 도로 복구 비용을 요청했지만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관리비 부담이 커져서 차량 차단기 설치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최근 경비원 98명이 무더기 퇴사하면서 논란이 됐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관리비 부담이 커져서 경비원 근무시간을 대폭 줄였다. 치안 공백을 경비업체인 에스원에 맡기면서 차량 차단기를 설치하게 됐다.

어린이 보호구역 해제 권한을 가진 부산시와 부산경찰청은 유보적인 입장이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도로교통법상 공용도로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에는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면서도 “주민 불편과 안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을 좀더 지켜보고 보호구역 지정 해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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