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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 해부② 기술? 돈 주고 사와 혁신으로 포장한다!

중앙일보

입력

캐나다의 연료전지 제조업체 발라드가 지난 8월 중국 자본에 팔렸다.

중국 최대 디젤엔진 제조업체인 웨이차이 파워가 지분 19.9%를 사들여 최대주주가 된 것이다. 발라드는 수소연료전지 특허만 130개를
가진
글로벌 선두 업체다. 발라드는 웨이차이에 연료전지 핵심 기술을 이전하고, 2021년까지 중국 수소 트럭·버스에 들어갈 전지를 공동 생산하기로 했다.

볼보·다임러 잇따라 인수한 中 지리차 #세계적 자동차 제조업체 반열에 올라 #자본력으로 시간·기술의 축적 극복 #중국식 혁신 기업의 사례로 꼽혀

한국은 세계 최초로 수소차를 양산한 나라지만 수소차 표준 경쟁에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뒤늦게 뛰어든 중국이 물량 공세로 국제 표준을 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중국은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수소차 개발에 관심을 쏟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 대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의 수소전기차 넥쏘(왼쪽). 여주에 있는 수소전기자동차 충전소 [출처 현대차]

현대의 수소전기차 넥쏘(왼쪽). 여주에 있는 수소전기자동차 충전소 [출처 현대차]

중국의 혁신은 이런 방식이다.

기술이 부족해 제품을 만들 수 없다면 기술을 가진 기업을 사들인다. 자본의 힘으로 시간과 기술의 축적을 뛰어넘는다.

이제는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업체로 성장한 지리(吉利)자동차도 그랬다. 2015년까지만 해도 연간 생산량이 50만대에 불과했던 이 회사. 해외 자동차 기업과 비교해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다. 바로 기술력과 특허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와의 격차를 도저히 메울 수 없었던 지리자동차는 하나의 계기를 통해 단번에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2010년 볼보를 인수한 것이다. 미국의 자동차 재벌 포드는 2000년대 재무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돼 부도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볼보를 매물로 내놨다.

볼보는 비록 2010년 당시 적자를 내고 있었지만 기술력 특히 안정성과 자율주행 기술 측면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로 인정받아 왔던 회사다. 지리자동차는 15억 달러(약 2조원)를 주고 볼보를 인수했고 볼보의 선진 기술과 특허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게다가 신제품 개발 시 볼보의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볼보의 디자이너, 엔지니어들이 합류하며 지리자동차의 수준은 2016년 이후 크게 향상됐다. 볼보라는 네트워크 덕분에 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회사로부터 부품 공급 계약을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 2월 지리자동차는 또 한 번 대형 M&A를 성공시키며 세계 자동차 업계를 놀라게 했다. 벤츠를 소유하고 있는 독일 다임러의 지분 9.69%(약 90억 달러)를 확보하면서 최대 주주에 오른 것이다.

8월에는 말레이시아의 국민차 브랜드 프로톤과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신에너지 자동차 합작 생산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지리자동차는 프로톤의 지분 49.9%를 인수한 바 있다.

[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올 상반기 지리자동차의 매출은 537억 위안(약 8조 77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증가했고 순이익은 54% 늘어난 66억 7000만 위안(약 1조 9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지리자동차는 목표했던 158만대 판매량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현대자동차는 2016년을 기점으로 판매량이 급감했다. 사드와 같은 정치적인 이유도 작용했지만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로컬 자동차의 공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던 점도 있다. 현대차가 비틀거리는 사이 볼보, 벤츠와 같은 세계적 브랜드의 명성을 업은 지리자동차가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나섰다.

 2012년 천안문 광장에서 현대자동차가 자사의 차량을 촬영한 사진 [출처 중앙포토]

2012년 천안문 광장에서 현대자동차가 자사의 차량을 촬영한 사진 [출처 중앙포토]

 지리자동차가 자금성에서 촬영한 사진은 2012년 현대차의 사진을 연상케 한다 [출처 중앙포토]

지리자동차가 자금성에서 촬영한 사진은 2012년 현대차의 사진을 연상케 한다 [출처 중앙포토]

지리자동차의 M&A는 중국 산업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다른 중국 기업들도 지리처럼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인수를 시도하고 있다. 유럽의 국가들은 중국 자본이 자국 기업을 잇따라인수하려 들자 고민에 빠졌다.

제일 다급한 나라는 독일이다. 2016년 중국의 가전업체 미데아는 독일 최대 산업용 로봇 기업인 쿠카를 45억 유로(약 5조 7558억원)에 인수했고, 2017년 2월에는 HNA 그룹이 도이치 은행 지분을 3%까지 매입하더니 나중에는 9.9%까지 지분율을 올리면서 최대 주주가 됐다. 푸젠 그랜드칩 인베스트먼트 펀드(FGCI)는 독일의 반도체 장비 업체회사 엑시트론을 매입하려다 미국과 독일 당국의 반대로 인수 시도가 무산되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재정 위기에 빠진 기업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10억 유로(약 1조 3159억원) 규모의 국부펀드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제는 중국 기업들이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다. 그 기술이 직접 만든 것이냐 사들인 것이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 어느새 글로벌 기업이 돼 버린 중국 현지 업체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혁신의 고삐를 더 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차이나랩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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