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無당적' 배경] 無黨 대통령으로 정국 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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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한 뒤에도 통합신당에 입당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명분과 실리 모두를 따져본 결론으로 풀이된다.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은 盧대통령이 무당적으로 총선에 임하기로 한 결단을 이렇게 설명했다.

"에베레스트 산이 제일 높은 것은 그 산이 히말라야 산맥 위에 있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산이 대통령이라면 히말라야 산맥은 정치개혁이다. 대통령이 된 것도 盧대통령 개인에 대한 인기보다는 '정치개혁'에 대한 거대한 시대적 욕구와 흐름 때문이라는 게 盧대통령의 생각이다."

文실장은 "이 때문에 盧대통령의 생각은 통합신당에 입당해 의석수를 늘리고 하는 수준의 사고를 뛰어넘어 한국 정치 구도의 본질적 변화를 이뤄내는 게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내년 총선을 전후한 盧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따라서 두가지 축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무당적 대통령의 입장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변화와 유권자의 의식 변화라는 정치개혁의 메시지를 던지는 게 한가지다. 이에 더해 구체적 국정 운영은 정책 사안별로 한나라당.민주당.통합신당을 가리지 않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盧대통령은 24일 부산.경남 언론인과의 간담회에서도 "처리해야 할 산적한 국정과 민생입법안들이 있는데 이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당적을 갖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盧대통령의 무당적 대통령 입장에는 치밀한 정치적 실익의 고려도 깔려 있다. 盧대통령이 통합신당에 입당하는 순간 국정 운영의 운신 폭은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라크 파병 문제만 해도 벌써부터 유엔평화유지군에 한해 용인하겠다는 김근태 대표의 통합신당과도 청와대의 현실적 판단이 다른 상황이다. 어차피 盧대통령이 신당에 자금.조직을 제공하지도 못할 상황인 데다 낮은 대통령 지지도 때문에 입당 후 신당에 실제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유일한 무기인 '정치개혁'의 명분까지 '정파적 이익을 위한 구호'로 의심받을 게 자명하다. 반면 盧대통령이 당적을 갖지 않더라도 이 같은 이중성의 시비는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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