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자본 유치 위한 경제 나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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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2일부터 일본을 방문한 「리펑」(이붕) 중국 수상은 중일 정상 회담·일왕 예방·산업 시찰 등 4박5일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16일 오후 귀국했다.
이붕 수상의 이번 방일은 지난해 8월 「다케시타」 수상의 중국 방문에 대한 답례 형식을 취했지만 앞으로의 중일 경제 관계에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성과를 담고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중 투자 확대를 위한 중일투자보호협정 서명 ▲중일투자촉진기구 및 기술교류회의 설치 등에 합의했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일본 기업이 투자를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중국이 종래와 달리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이 수상이 이렇게 일본 기업의 대중국 투자 유치에 발벗고 나선 데는 중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의 난기류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관광객이면 누구나 살인적인 인플레와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야기한다. 극히 최근까지 1병에 20원(약3천6백원) 하던 마오타이주가 1백20원에도 구할 수 없게 되었다고 전한다.
공교롭게도 15일 사망한 「후야오방」(호요방) 전 총서기 등 개혁 개방자가 주도한 경제 개혁의 속도가 비판을 받고, 이른바 「경제 조정 노선」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사정을 이 수상은 직접 일본의 경제계 지도자들에게 설명할 기회를 갖고 경제대국 일본의 돈을 더 많이 끌어들임으로써 경제 난국을 벗어나야겠다는 절박함을 안고 이번 일본 방문에 나선 셈이다.
그가 준비한 일본 자본 유치책의 중요 대목인 투자보호협정은 앞으로 중국에 투자하는 일본 기업에 대해 중국 기업과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이른바 「내국민 대우」라는 주목할 만한 조항을 명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진출 기업의 투자 재산, 수익, 사무소나 공장의 유지, 종업원의 고용·해고 등 투자에 관련한 사업 활동에 대해 중국 기업보다 불리하지 않게 대우하겠다는 내용이다.
5월14일부터 발효되는 이 협정에 따라 일본의 대중국 투자 액수는 훨씬 늘어나리란 전망이다.
사실 현재까지 상업 자금, 특히 일본 기업과의 공동 출자에 의한 합작 기업의 설립이나 기술 이전이 중국측의 기대만큼 늘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79∼89년까지 통계를 보면 일본 기업의 합작 건수는 1백69건에 그쳐 미국의 2백13건에 못 미치고 있다. 총 합작 투자 액수의 7%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투자 협정 서명으로도 풀리지 않는 대중 투자의 걸림돌은 많다고 일본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외화 규제와 공영기업에서 오는 경영권 제약이다.
이번에 일본과 맺은 투자보호협정은 이 같은 일본 기업의 불이익을 상당 부분 중국 정부에서 떠맡고 마찰 해소를 위한 마찰 기구를 설치키로 했다는 점에서 중국측의 대폭적인 양보인 셈이다.
이밖에도 이붕 수상은 「아키히토」 일왕으로부터 근대 역사에서 있었던 불행한 과거에 대해 유감의 뜻을 얻어내는 한편 일왕의 방중을 초청함으로써 양국의 외교 관계를 진전시켰다.
이 수상이 또 최근의 일본-북한 관계 개선 움직임과 관련, 『일본이 북한과 정부 레벨에서 대화할 의도를 발표한 것에 주의하고 환영한다』는 뜻을 밝혀 대북한 관계 개선에 교량역을 할 것을 분명히 한 것도 중국의 「외교 적극화」로 풀이할 수 있다.
대북한 관계 개선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3월 하순 소련의 「로가초프」 외무차관도 일소외무차관협의회에서 「중개 의사」를 밝힌 바 있어 북한을 의식한 중소의 의례적인 제스처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달 하순 중국의 조자양 총서기가 북한을 방문할 예정으로 있으며 일본측이 관계 개선 의사를 조 총서기를 통해 전달해 달라는 강력한 요청도 있어 중국의 「측면적 지원」 의사는 종래와 달리 매우 현실성을 띠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붕 수상의 이번 방일은 어디까지나 투자 유치를 노린 「경제 세일즈」의 성격이 짙었으나 문화 및 외교 대국으로서의 중국의 체면 유지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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