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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조희팔' 김성훈 은닉재산 파헤치는 법원의 한 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비트코인 샀대요”, “그 친구 찾아봐요”…‘제2의 조희팔’ 김성훈 IDS 대표 은닉재산 제보 속출

“저…. 제가 김성훈이 숨긴 재산을 아는데요….”

법원 '보상금 지급' 공고 후 제보 전화 봇물 #첫 보상금 받은 제보자는 舊 다단계 피해자 #"보상금 활성화해 다른 사건에도 적용할 것"

지난 8월 초 서울회생법원 파산관재인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2의 조희팔’로 불리는 김성훈 IDS홀딩스 대표가 숨겨 놓은 재산을 안다는 남성 A씨였다. 김 대표는 불법 다단계(유사수신) 혐의 등으로 지난해 12월 구속, 징역 15년이 확정돼 현재 복역 중이다. 채권자, 즉 김 대표에게 피해를 본 사람만 약 8000명에 이르며 피해액은 1조원여원으로 추산된다. 김 대표는 지난 2월 파산했다. 그의 재산을 모두 찾아서 채권자에게 돌려주는 게 파산관재인의 일이다.

IDS홀딩스 피해자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IDS홀딩스 대표 김성훈 뇌물죄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IDS홀딩스 피해자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IDS홀딩스 대표 김성훈 뇌물죄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A씨가 제보한 김 대표 재산은 1억8000만원에 상당의 아파트 근저당권이었다. 김 대표가 지인인 한 투자회사 대표 B씨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신 B씨 부인 명의로 된 아파트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놨던 것이다. 김 대표 명의로 돼 있는 부동산은 파산관재인도 쉽게 찾아낼 수 있지만 김 대표가 설정한 근저당권의 존재까지는 알 수가 없다.

제보를 받은 파산관재인 사무소 측은 B씨의 법인 등기부 등본을 떼 대표 주소를 찾고 그 주소에 대한 등기를 다시 확인했다. 결국 B씨 부인 명의로 된 아파트에 김 대표가 근저당권을 설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파산관재인 측은 지난 9월 B씨에게서 김 대표가 빌려준 돈 1억8000만원을 돌려받았다.

A씨가 이런 '내부 정보'를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역시 과거 김 대표의 다단계 사기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구속되기 전 조직을 나왔기 때문에 사실상 피해액은 없었지만 A씨 가족과 주변엔 피해자가 여전히 꽤 있다. 김 대표가 돈을 빌려줬다는 B씨와도 인연이 있었다. A씨는 파산관재인에게 “2015년에 B씨로부터 김 대표와의 돈 거래 이야기를 들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A씨처럼 김 대표의 은닉 재산을 신고하는 전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의 파산 후 채권자들의 피해액을 최대한 회복하고자 도와주려는 의도에서다. 여기에 서울행정법원이 공고한 '보상금'도 제보가 이어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울회생법원은 김 대표의 은닉재산을 찾기 위해 그동안 사문화되어 있던 신고 보상금 제도를 부활시켰다. 기여도에 따라 은닉재산을 찾도록 도와준 사람에게 회수액의 5~20%에 달하는 금액을 보상금으로 준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지난 10월 기여도를 인정받아 회수액의 5%에 해당하는 900만원을 보상금으로 받았다. 서울회생법원에서 지급한 첫 신고 보상금이었다. 법원은 '자금흐름조사 등 정밀조사를 통해 은닉의 정황이 파악될 수 있는 수준의 정보를 제공한 경우 실회수금액의 5%를 보상금으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추가 조사 없이 즉시 회수 조치 가능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면 실회수 금액의 20%까지 보상금이 지급된다.

파산관재인 사무실의 이명오 팀장은 “김 대표와 관련한 보상금 공고를 지난 2월 피해자 카페에 올린 후 제보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며 “‘김 대표가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고 하니 알아보라’, ‘김 대표가 친구에게 은닉했다’ 등 확인할 수 없는 제보부터 이미 파산관재인 사무실에서 파악한 정보들까지 제보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확인할 방법이 없는 근거 없는 제보와 이미 파산관재인이 파악한 정보에 대해서는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김 대표 사건을 담당하는 파산관재인 임창기 변호사는 “서류로 파악할 수 있는 김 대표의 재산 외의 것은 김 대표 본인이 직접 말해줘야 하는데 자기도 자기 재산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고 하거나 밝힐 수 없다고 한다”며 “현재까지 약 500억원의 재산을 찾았고 앞으로도 300~400억원 정도의 재산을 더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22일 서울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앞에서 IDS홀딩스 피해자연합회 회원들이 'IDS홀딩스 면책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22일 서울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앞에서 IDS홀딩스 피해자연합회 회원들이 'IDS홀딩스 면책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다. 임 변호사는 “국내 재산은 물론 해외에 투자된 재산까지도 찾아야 하는 만큼 단기간에 성과를 내긴 어려울 것”이라며 “신고자들의 결정적 제보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도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신고 보상금 제도를 활성화할 계획”이라며 “악성 채권자가 파산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막고 채권자를 보호하는 제도 취지를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다단계 등 서민을 대상으로 한 유사수신 범죄 행위는 점차 지능화·조직화하고 있다. 임 변호사는 “최근 나온 유사수신 범죄 중에는 기존에 매월 주던 이자를 ‘매일’ 주는 것도 있다고 한다”며 “10년째 파산관재인 일을 하고 있는데 요즘 팍팍한 삶 때문인지 서민들이 더 쉽게 유사수신 행위에 마치 마약처럼 빠지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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