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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집권 6년, 경제 도움된다면 지지층 반발도 무시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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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기자=“장기정권의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비결은 없고 매일 매일이 쌓인 것이지만, 기본적으론 12년 전 제1차 때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1년 만에 끝났다. 그 좌절의 경험이 중요한 거름이 됐다고 생각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일자리 개방 #보수단체 “배신자” 시위에도 강행 #“관광 공해” 비판 속 관광정책 강화 #주가·취업률이 스캔들도 잠재워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신조 총리가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신조 총리가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베 총리가 ‘역대 최장 일본 총리’라는 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 26일로 아베 내각이 재출범한 지 만 6년이었다. 그 하루 전인 25일 아베 총리와 기자들 사이엔 이런 대화가 오갔다.

1차 아베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까지 합치면 그의 재임일수는 2558일이다.
그가 임기를 계속 채워나가면 내년 2월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2616일)를 제치고 전후 2위, 8월엔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2798일)보다 앞서 전후 1위, 11월엔 가쓰라 다로(桂太郞·2886일)를 제치고 역대 최장 총리에 등극한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재임 중 한국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3명을 상대하는 게 된다.

롱런의 거름이 됐다는 1차 아베 내각 시절의 쓰라린 경험은 뭘까.
당시 아베 총리는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이념적 색채가 농후한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애국심을 중시하는 도덕교육을 부활시키는 교육기본법 개정, 방위청의 방위성 격상, 평화헌법 개정의 기초작업으로서의 국민투표법 개정 등 보수적 정책을 야당의 반대 속에 강행했다.
이는 결국 정권에 부담이 됐고, 각료들의 스캔들이 이어지며 단명으로 끝났다.

지난 9월 6일 홋카이도 지진 발생 이후 출근길에 기자회견을 하는 아베 신조 총리[AP=연합뉴스]

지난 9월 6일 홋카이도 지진 발생 이후 출근길에 기자회견을 하는 아베 신조 총리[AP=연합뉴스]

2012년 재집권 이후에도 정책의 보수색채나 힘으로 밀어붙이는 국정운영 방식은 1차 내각 때와 별로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아베노믹스를 일관되게 밀어붙여 경기 회복 기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경제 회복 없이는 정권과 국정의 안정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절감한 아베 총리가 줄곧 경제를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뒀기 때문이다.

‘경기가 개선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경기 판단은 6년 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또 지난 10월 기준 취업자 수는 70개월 연속으로 증가했다. 미국 주가 불안정의 여파로 24일 폭락하긴 했지만 닛케이 주가도 6년 전 1만230의 2배 수준인 2만까지 올랐다.

취업과 경기 측면에서 아베노믹스의 훈풍을 경험한 젊은 층과 기업가들의 지지는 각종 스캔들 속에서도 아베 총리가 정권을 유지하는 기반이 됐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26일 “2차 아베 내각 발족 직후부터 금융완화, 재정투입, 성장전략이란 3개의 화살을 내걸고 일관되게 경제 최우선을 강조했다”며 “사학재단 스캔들로 인한 지지율 하락 속에서도 주가와 각종 경제 수치가 정권을 지탱해왔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경제적으론 ‘잃어버린 20년’이란 장기 불황, 정치적으론 잦은 총리 교체로 인한 정권의 불안정이란 일본 국민의 두 가지 콤플렉스를 아베 정권이 해소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수해 현장을 둘러보는 아베 신조 총리.[사진 아베신조 총리 트위터]

수해 현장을 둘러보는 아베 신조 총리.[사진 아베신조 총리 트위터]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하며 마지막 3년 임기를 부여받은 아베 총리의 향후 국정 운영에도 ‘경제 최우선 기조’는 이어질 전망이다.
아사히 신문은 “강력한 지지 기반인 보수층이 반발하더라도 경제에 플러스가 된다면, 체면이든 무엇이든 따지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는 게 아베 총리의 자세”라고 했다.

신문이 사례로 든 건 외국인 문호개방 정책이다. 외국인 단순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개방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던 11월 하순엔 그동안 아베 총리를 지지했던 보수단체들이 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이례적 광경이 벌어졌다.

이들은 ‘망국적인 이민법안 절대 반대’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일본을 되찾겠다고,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겠다고 했던 아베가 일본을 해체하는 다민족국가의 길을 걸으려 한다”고 반발했다. 인터넷 우익들 사이엔 “매국법 만드는 아베는 배신자”는 비난이 들끓었다.

처음엔 이 법안에 신중했던 아베 총리가 “일손 부족으로 일본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며 방침을 바꾼 걸 두고 아사히는 “경기가 후퇴할 경우 향후 (참의원) 선거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관광입국 정책도 비슷한 맥락이다.  2011년 622만명이던 외국인 관광객은 아베 정권 6년을 거치며 2018년 3000만명을 돌파했다. “수용인원을 넘어선 관광객들이 시민 생활에 ‘공해’가 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아베 내각은 ‘2020년 4000만명’이란 목표를 내걸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8%→10%)과 그로 인한 경기 위축 가능성은 아베 총리에게 고비가 될 수 있다. 지난 21일 각의(우리의 국무회의에 해당)를 통과한 2019년도 예산안이 역대 처음으로 100조엔(약 1000조원)을 넘어선 것도 경기 위축 가능성을 의식한 조치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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