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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3법 '패스트트랙' 보낸다지만 사실상 ‘슬로우트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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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유치원법 관련 협의체 회동에서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교육위 간사(왼쪽부터), 김태년 정책위의장, 자유한국당 정용기 정책위의장, 전희경 교육위 위원, 바른미래당 임재훈 교육위 간사가 손잡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유치원법 관련 협의체 회동에서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교육위 간사(왼쪽부터), 김태년 정책위의장, 자유한국당 정용기 정책위의장, 전희경 교육위 위원, 바른미래당 임재훈 교육위 간사가 손잡고 있다. [연합뉴스]

“불행하게도 (합의가) 최종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개인적으로 패스트트랙에 찬성하기 때문에 당 지도부와 긴밀하게 상의해서 최종 입장을 정하겠다.”

국회 교육위 바른미래당 간사인 임재훈 의원은 24일 사립유치원 비리를 막기 위한 ‘유치원3법’ 논의를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교섭단체 정책위의장과 교육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이 참여하는 6인 협의체가 이날도 유치원 3법 합의에 실패하자 법안을 패스트트랙(fast trackㆍ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도 지난 21일 당 최고위에서 “자유한국당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워 패스트트랙을 통해 처리할 길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에 이어 바른미래당까지 동참 의사를 보이면서 유치원 3법이 패스트트랙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패스트트랙 제도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2012년부터 시행됐다. 정당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려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자는 취지다. 법안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상임위 법안소위, 상임위 전체회의, 법사위 심사를 모두 생략하고 바로 본회의로 직행하기 때문에 ‘빠른 경로’(패스트 트랙)라고 불리는 것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리유치원 문제 해결과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시민대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리유치원 문제 해결과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시민대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다만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상임위 재적 인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유치원3법 소관 상임위인 교육위는 현재 재적 위원이 15명인데, 민주당(7명)과 바른미래당(2명)을 합하면 9명으로 3분의 2를 채우게 된다. 유치원 3법을 발의한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2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유치원 3법은 패스트트랙으로 간다고 보면 된다. (바른미래당 협조를 구하기 위해) 바른미래당이 낸 중재법안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 기간이 문제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중간에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상임위에서 180일, 법사위에서 90일, 본회의에서 60일 머물렀다가 총 330일이나 지나야 본회의에서 투표를 할 수 있다. 2017년 패스트 트랙 제도로 국회를 통과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 참사법)’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지 336일이 지나서야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사실상 ‘슬로트랙’(slow track)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013년 당시 새누리당은 외국인투자촉진법의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을 검토했지만, 너무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포기한 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치원·어린이집 공공성 강화 특별위원회 남인순 위원장과 의원들이 1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치원 3법 연내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유치원·어린이집 공공성 강화 특별위원회 남인순 위원장과 의원들이 1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치원 3법 연내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도 이 점 때문에 유치원 3법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임재훈 의원은 “개인적으론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에 찬성한다. 하지만 11개월 지나면 내년 말인데, 그러면 총선 정국이다. 의원들이 다들 지역구에 가 있을 거고, 공천 때문에 유치원 3법에 신경도 안 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한 의원도 “패스트트랙으로 유치원 3법을 처리하면 기간이 너무 많이 필요해 오히려 국민들 관심사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패스트 트랙 처리에 신중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도 있다”고 전했다.

또 패스트트랙 제도를 활용할 경우 설득과 타협이라는 국회의 본래 기능을 외면했다는 지적도 정치권으로선 부담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패스트트랙 제도 도입 당시 발간한 ‘이슈와 논점’ 보고서에서 “다양한 정치적 입장이 타협하고 이해 갈등을 조정해가는 (국회의) 입법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입법 결과에 정당성과 민주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절차일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원내정당들은 패스트트랙 절차를 남용하지 않기 위한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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