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문고 글 올렸다가 신원 노출된 교직원 목숨 끊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민신문고에 승진을 앞둔 교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개인정보가 노출돼 괴로워하던 학교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은 “개인정보가 노출된 뒤 협박에 시달렸다”며 해당 교사와 교육청 직원 등을 경찰에 고소했다.

가족 "개인정보 노출 후 협박 시달렸다" 교육청 직원 등 고소

25일 전남 장성경찰서에 따르면 장성의 모 고교에서 일하던 교무행정사 A씨(29ㆍ여)가 지난 3일 광주광역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없었다.

A씨가 숨진 지 일주일 만인 지난 10일 남편은 ‘아내가 근무하던 학교 교사에게 지속적인 협박을 받아 목숨을 끊었다’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A씨가 교감 승진을 앞둔 교사 B씨(60)에 대한 부정적인 주변의 평가를 담은 글을 지난 1월 국민신문고에 올린 뒤 신원이 노출됐고, 이후 B씨로부터 협박을 당했다는 주장이다.

전남 장성의 한 고교 교직원이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린 뒤 개인정보고 노출돼 괴로워하다가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중앙포토]

전남 장성의 한 고교 교직원이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린 뒤 개인정보고 노출돼 괴로워하다가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중앙포토]

A씨의 휴대전화에서는 B씨에게서 받은 21건의 문자메시지가 발견됐다. 자신을 비판하는 국민신문고 글을 올리게 한 ‘배후’를 밝히라는 내용이다. 이를 밝히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 처벌받도록 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다만 심한 폭언이나 욕설은 없었다.

국민신문고. [국민신문고 인터넷 홈페이지 캡쳐]

국민신문고. [국민신문고 인터넷 홈페이지 캡쳐]

경찰에 따르면 A씨의 신원은 지난 3월 승진에서 탈락한 B씨가 교육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하는 과정에 나왔다. 소청심사위는 B씨의 승진 탈락 배경을 확인하기 위해 전남도교육청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문제는 이후였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자료를 넘겨받아 보관하던 교육청 측은 A씨가 올린 B씨에 대한 평가 글을 그대로 소청심사위 측에 제공했다. A씨가 신원이 노출되지 않으려고 쓴 가족의 이름과 연락처를 삭제하지 않은 채다. 소청심사위 측도 이 같은 정보를 지우지 않고 B씨에 대한 답변 과정에 전달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B씨는 답변 자료에 담긴 연락처로 전화해 자신에 대한 글을 올린 사람이 A씨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개인정보 관리를 허술하게 한 혐의로 전남도교육청 담당자를 최근 불러 조사했다. 교육청 측은 고의가 아닌 행정적인 실수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경찰은 소청심사위 담당 교육부 직원과 교사 B씨 등도 차례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장성=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