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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잡지 만들기 '작은 벌이 큰 보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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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동종업체들이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문닫을 때마다 오히려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제가 먼저 그만둬야 하는데 선수를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돌이켜보면 지난 10년은 물 위에서 코만 내놓고 숨을 쉬면서 버텼던 것 같아요. 이젠 비교적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1993년 10월 탄생한 문화정보지 월간 서울스코프의 조유현(趙楡顯.42) 발행인은 서울스코프의 창간 10주년을 맞아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趙발행인은 76년부터 국내 최고 전통의 무용전문지 '춤'을 발행해온 조동화(趙東華.81)씨의 아들이다. 2대째 돈벌이가 안되는 문화잡지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되지만 문화전문지를 내온 아버지는 제 인생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서울스코프는 창간 때와 마찬가지로 10주년 기념행사도 없으며, 특집기사 또는 특별한 축하 이벤트도 없다.

趙발행인은 "축하행사를 할 돈이 있다면 서울스코프 한 호라도 더 내고, 판매가격(2천원)을 더 낮추는 데 쓰고 싶다"고 말했다. 또 "창간 당시 바람이었던 '한국을 대표하는'이란 사치스러운 수식어를 붙일 수는 없지만 유일하게 유가지로 발행되는 월간 문화정보지로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만은 않다"고 소회를 밝혔다.

서울스코프는 영화.연극 등 각종 공연정보를 주로 싣는다. 94년부터 8년간 별도의 영문판을 발행했고, 지금도 영문 번역문을 싣고 있어 외국인들에게도 친숙하다. 2001년에는 서울시의 '서울 홍보책자상'을 받았고, 현재 잡지로선 유일하게 서울시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 있다. 10년 전 서울스코프를 창간했던 이유가 궁금했다.

"90년대 초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월간 문화정보지 '파리스코프'가 국민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그때 미국의 '뉴욕커', 영국의 '타임아웃', 일본의 '삐아' 등 나라마다 대표적인 문화정보지가 있는데 우리는 왜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趙발행인의 다양한 재능도 잡지를 내는 과정에서 큰 힘이 됐다.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한 뒤 광고대행사.영화사에서 일했던 그는 99년 월간 에세이로부터 수필문학상을 받았고,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해 왔다. 그는 현재 늘봄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다.

물론 지난 10년간 위기도 적지 않았다. 여성을 타깃으로 한 여성지나, 자동차.낚시.오디오 등 매니어를 위한 전문지와는 달리 문화정보지는 광고시장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여력이 많지 않아 3~4명의 인력으로 서울스코프를 발행해온 것도 이런 사정에서 비롯됐다.

"서울 혜화동의 허름한 건물 지하실에 세를 들어 잡지를 만들었는데 여름마다 폭우로 사무실에 물이 가득 들어차는 수해를 입었어요. 광고를 수주하지 못해 적자를 낼 때도 많았고요. 하지만 그때마다 절묘하게도 유명호텔에서 객실 비치용으로 잡지를 대량 구매해주고, 한국관광공사에서 해외에 보낼 한국홍보지로 서울스코프를 선정하는 등 믿지 못할 일들이 생겼어요. 모두 저희로선 고마운 일이었죠."

그는 "서울스코프에는 우리 시대의 문화사가 녹아 있다"며 "앞으로도 서울스코프가 한국이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조그마한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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