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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 사고 현장 둘러본 김씨 어머니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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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죽었다는 소리에 저희도 같이 죽었습니다."

엄마는 아들이 일했던 컨베이어 설비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보고 싶었다. 일곱 달 동안 수십차례 입사 원서를 넣어 겨우 붙은 단 한 곳의 직장이었다. 아들의 일터를 찾은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어른 허벅지 높이까지 쌓인 석탄 조각 때문에 걷기도 힘들었다. 흩날리는 탄가루에 4~5m 앞에 있는 사람도 뿌옇게 보였다. 너무 많은 작업량과 열악한 환경. 아이를 이런 곳에 맡겼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일자리가 없어도, 평생 놀고먹어도, 이런 곳은 안 보낼 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생사 살인 병기에 내몰겠습니까"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컨베이어 운전원은 컨베이어 벨트를 둘러싸고 있는 네모난 철제 구멍으로 몸을 집어넣고 안쪽에 이물질이 끼이진 않았는지 확인한다. [태안화력대책위원회 제공]

컨베이어 운전원은 컨베이어 벨트를 둘러싸고 있는 네모난 철제 구멍으로 몸을 집어넣고 안쪽에 이물질이 끼이진 않았는지 확인한다. [태안화력대책위원회 제공]

김용균씨는 석탄을 옮기는 컨베이어 설비를 점검하고 끼어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일을 맡았다. 어른 남자 상반신이 들어갈 만한 공간에 몸을 집어넣고 옆을 보면서 석탄을 꺼냈다. "딱 이만했어요. 이만했어." 엄마는 아들이 고개를 집어넣고 일했을 네모난 구멍을 손으로 그려 보였다. "그 위험한 곳에 머리를 집어넣고. 저는 기가 막혔습니다."

엄마는 아들의 동료들에게 아들의 마지막 모습도 물었다. 몸이 두 동강이 나고 등은 갈라진 채 벨트에 끼어 있었다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엄마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나라에서, 정부 시설에서 일하던 아들 곁에는 위험한 순간 도와줄 안전 기구도, 사람도 없었다. "우리나라를 바꾸고 싶습니다. 아니 나라를 저주합니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 무슨 소용입니까. " 가정에서 회사만 다니던 보통 엄마는 아이를 잡아먹은 이런 회사가 또 다른 사람을 잡아먹지 않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아들을 이렇게 만든 이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모든 진상을 밝혀주기를 호소했다. 말을 마친 엄마는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훔쳤다.

14일 오후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 브리핑에서 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수정 기자

14일 오후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 브리핑에서 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수정 기자

민주노총 등 70개 단체가 만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4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사고 현장을 둘러본 결과를 발표했다. 대책위는 서부 발전이 사고 현장을 정리해 회사의 과실을 줄이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비상시 잡아당겨 설비 작동을 멈추는 '풀코드'는 평소에는 줄이 느슨하게 풀어져 있고 탄가루가 까맣게 묻어있었다.

그런데 어제 현장조사에서는 줄이 팽팽하게 감겨있고 깨끗하게 닦여 빨간 줄 색깔이 드러날 정도였다는 것이다. 또 회사 측은 최초 경찰 신고 시점을 11일 새벽 3시 50분이라고 했는데 경찰은 새벽 4시 25분으로 밝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성애 정책국장은 "산재가 많으면 입찰에 참여할 수 없고 벌금도 내야 하기 때문에 산재를 은폐할 수밖에 없다"며 신고 시간 오류가 단순 착오가 아닐 가능성도 제기했다. 대책위원회는 15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촛불집회와 문화제를 열기로 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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