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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수석 "대통령이 보내서 왔다"···"사람 죽어야 오나" 항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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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용균이 나이가 몇살인지 아세요”(동료직원) “그런 거 물어보지 마세요”(수석) “발전소에 비정규직 근로자가 몇 명인지 아세요?”(동료직원) “지금 나와 토론하자는 건가요?”(수석)

14일 오후 김용균씨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태안화력 시민대책위' 관계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후 김용균씨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태안화력 시민대책위' 관계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후 2시10분쯤 충남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용균(24)씨 빈소에서 청와대 이용선 시민사회수석과 김씨 회사 동료직원, 시민대책위원회 사이에서 오간 대화다.

文대통령 지시로 빈소 찾은 이용선 수석 환영 못 받아 #김씨 동료·시민대책위 "사람이 죽어야 찾아온다" 항의 #사고현장 본 김씨 어머니 "너희는 안전해야 한다" 당부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빈소를 찾은 이 수석은 유족과 김씨 동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대통령님이 보내서 왔다” “사측이 조사를 하고 있다”는 형식적인 말만 되풀이하던 이 수석에게 김씨 동료와 시민대책위는 “만나달라고 할 때는 오지도 않더니 사람이 죽어야 옵니까” “죽은 사람과 얘기할 수 있습니까”라고 항의했다.

 14일 오후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고 김용균씨 빈소가 마련된 충남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후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고 김용균씨 빈소가 마련된 충남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겨우 조문을 마친 이 수석은 “(김씨)어머님께서 대통령님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이런 뜻을 전달해달라”는 동료 직원들의 부탁에 “알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빈소에 도착한 지 30분여분 만이었다.

지난 11일 오전 3시20분쯤 충남 태안군 원북면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설비에서 일하던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된 김씨의 추모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빈소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13일 태안버스터미널 사거리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그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린 것을 시작으로 14일에는 전주로 촛불집회가 확산한다. 태안터미널 사거리와 광화문에서는 고인의 장례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촛불문화제가 계속된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3일 오후 태안버스터미널 네거리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3일 오후 태안버스터미널 네거리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화력발전소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였던 김씨는 지난 10일 오후 6시쯤 전임자와 근무를 교대하고 현장에 투입됐다. 오후 8시25분쯤 석탄 운반설비를 점검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오후 10시40분 약속한 장소에 김씨가 나타나지 않자 동료들이 그를 찾아 나섰다. 석탄을 나르는 4~5㎞ 길이의 컨베이어벨트를 모두 확인한 뒤에야 김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였다.

태안화력발전소는 석탄을 주원료로 가동하며 저장소에서 발전기까지 컨베이어벨트로 석탄을 운반한다. 김씨는 벨트 사이를 오가며 석탄이 제대로 운반되는지를 확인하는 직원이었다. 벨트 주변에 석탄이 떨어지거나 이물질이 발견되면 치우는 것도 그의 임무였다.

14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씨 아버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씨 아버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를 발견한 동료들은 곧바로 화력발전소 내 방제센터에 연락했다. 경찰이나 119구급대로 먼저 연락하지 않은 것은 내부 규정 때문이었다.

발전소 측은 김씨가 발견된 지 1시간이 지난 오전 4시25분쯤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가 소속된 하청업체와 발전소 통제센터가 서로 신고했다고 판단, 혼선이 빚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발전기술 직원들은 “원청(한국서부발전·화력발전소)이 사고를 은폐·축소하기 위해 이런 규정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예전에도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외부에 알리지 말 것을 요구했던 사례가 적지 않아서였다.

지난 11일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망사건과 관련해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사장이 1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지난 11일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망사건과 관련해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사장이 1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경찰과 119구급대가 김씨 시신을 수습하자 발전소는 컨베이어벨트를 재가동할 것을 하청업체에 요구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벨트 2개 중 김씨가 사고를 당한 벨트를 제외한 나머지 벨트가 1시간가량 가동됐다.

김씨 소속회사인 한국발전기술㈜ 노조 신대원 지부장은 1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찌 됐던 사후처리를 해야 하는 데, 발전소가 이익에 급한 나머지 연료(석탄)를 공급해달라. 다시 운전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신 지부장은 “진상규명도 안 됐고 고용노동부에서 작업중지를 지시했는데, 발전소는 벨트를 계속 가동할 것을 요구했다”며 “사고가 나도 원청(발전소)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하청업체에)다 떠넘겼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근로자 고 김용균씨 사망사고 현장에 '작업중지 명령서'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근로자 고 김용균씨 사망사고 현장에 '작업중지 명령서'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은 “발전소는 국가전력망이라 사고가 나더라도 바로 가동을 중단하지 못한다. 불가피하게 1시간 정도 가동한 후에 컨베이어벨트를 중단했다”고 해명했다.

전국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한국서부발전㈜ 등 5개 발전사에서 발생한 346건의 사고 가운데 97%(377건)가 하청업체 업무였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산재로 사망한 40명 가운데 하청업체 근로자가 92%(32명)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하청업체 근로자는 12명이나 됐다.

지난 13일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씨 어머니가 아들이 동료를 안아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씨 어머니가 아들이 동료를 안아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 발생 사흘만인 13일 현장을 찾았던 김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동료에게 “우리 아들은 잘못됐지만, 너희는 안전하게 일해야 한다”고 눈물을 흘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태안경찰서는 사고 직후 회사 안전책임자 등을 불러 참고인 조사를 마친데 이어 14일에는 김씨 동료를 불러 조사했다. 근무형태와 내용을 비롯해 직원들이 매뉴얼대로 안전교육을 받았는지 등을 확인했다.

경찰에 소환된 한국발전기술 안전관리 담당자는 “인력이 부족해 관례적으로 1명씩 근무해왔다”며 2인 1조 근무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지난 12일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가 충남 태안 서부발전 본사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2일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가 충남 태안 서부발전 본사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중앙포토]

경찰은 2015년 한국서부발전과 김씨 소속회사인 한국발전기술이 체결한 외주 계약서를 확보, 안전관리 책임소재도 확인하고 있다. 원청회사인 한국서부발전 임직원도 소환, 책임이 드러나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입건할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관과 안전보건공단 전문가 등 22명을 투입해 태안화력발전소에 대한 특별감독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11월에도 보일러 교체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근로자가 숨지기도 했다.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사장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건 현안보고에 출석해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사장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건 현안보고에 출석해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관계자는 “오늘(14일) 현장을 찾아 김씨가 맡아 일했던 구역을 살펴봤다”며 “정확한 경위를 밝히기 위해 고용부와 공조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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