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영어 강의' 광주과기원에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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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old you several times equalibrium is important in this issue…(이퀼리브리움이 이 이슈에선 중요하다고 몇번 얘기해줬지요)"

지난 17일 광주시 북구 오룡동 광주과학기술원의 '반도체 구조 및 물성' 강의실. 신소재공학과 성태연 교수가 쉴 새 없이 칠판에 기호와 전문용어를 적어 가며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다.

주로 석사과정인 학생들은 노트에 필기를 하느라 바쁘게 손을 놀렸다.

"Do you have any question?(질문이 있나요)" 1시간 반의 강의시간에 8명 정도의 학생이 영어로 질문을 했다. 유창한 영어는 아니지만 의사 전달에는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베트남과 인도 등에서 온 3명의 외국 학생도 이날의 영어 강의에 무리없이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이공관 엘리베이터 안에는 축구대회와 저녁 식사를 하는 친목 학생 모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영어로 붙어 있다.

광주과기원은 설립 초기부터 1백% 영어 강의를 표방해왔다. 1995년 3월 첫 입학생을 받은 뒤 이듬해인 96년부터 영어 강의를 했다.

초대 교학처장이었던 이 학교 백운출 정보통신공학과 석좌교수는 "후발 이공계 전문대학원으로 다른 곳과 어떻게 하면 차별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전 과목에 영어 강의를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일본과 유럽에서 학위를 받은 일부 교수의 반대가 있었지만 밀고나갔다고 한다.

초기에는 수업 중 질문.대답 등 상당수가 한국어로 진행됐고, 많은 학생이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매 학기 수업이 끝난 뒤 강의별로 실시하는 학생 설문에서는 "영어 강의가 도움되며 이해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가 30%대, "힘들긴 하지만 꼭 필요하다"가 60%대의 답변을 보였다.

학생들이 과학기술 논문 인용색인(SCI) 논문을 많이 내는 것도 영어 강의 덕분이라는 게 학교 관계자들의 평가다. 이번에 졸업한 박사 중 한명은 4년 동안 무려 16편의 SCI 논문을 냈다. 전체 졸업생 평균은 5편이다. 이는 미국 유명 대학과 비슷한 수준이다.

광주과기원 나정웅 원장은 "학부가 생기면 1백% 영어 강의를 학부과정까지 확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어 강의는 교수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해 이곳의 교수 1인당 SCI 논문 수는 5.34편으로 2위인 KAIST 3.07편의 거의 두배 수준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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