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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인터넷, 마녀사냥과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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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인터넷 마녀사냥'은 인터넷 시대 신화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한 대학생을 파멸시킨 사건은 6월 초 뉴욕 타임스 보도로 널리 알려졌다. 인터넷 게시판에 '아내와 놀아난 대학생'을 고발한 남편의 글이 발단이다. '지성인이라는 대학생이 어떻게 버젓이 남편 있는 여자와 놀아날 수 있습니까'라는 글에 네티즌들이 흥분했다. '불륜 남녀를 처단하자'는 결사대가 만들어져 퉁쉬(銅鬚)라는 ID를 사용하는 대학생을 추적했다. 이름과 주소는 물론 친구와 가족까지 공개됐고, 각종 협박이 쏟아졌다. 퉁쉬가 결백을 주장하는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 퉁쉬는 온라인게임 동호회에서 만난 여인과 메일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불륜을 고발했던 남편까지 나서 '사실이 아니다'며 진정을 호소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퉁쉬는 대학을 자퇴하고 잠적했다.

이 사건은 흔히 '민주화 기술(Democratizing Technology)'로 칭송받아온 인터넷의 신화를 깨트렸다. 인터넷이 민주화를 촉진한다는 주장은 오래된 신화다. 사이버 세상에선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현할 수 있기에 인터넷이 민주.평등 사회를 불러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퉁쉬 사건은 인터넷이 비인간적인 폭력과 정보의 왜곡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뉴욕 타임스는 퉁쉬 사건을 문화혁명 당시 인민재판에 비유했다. 인터넷이 40년 전 아날로그 시대와 같은 집단적 광기의 발산처 구실을 한 셈이다.

무대가 중국이라는 점은 더 의미심장하다. 서방 전문가들은 10여 년 전부터 인터넷 확산이 중국의 민주화를 가져오리라 기대해왔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 2위의 인터넷 인구, 1억 명 이상의 네티즌을 자랑하는 현재까지 정치적 민주주의는 아직 멀어 보인다. 4일 천안문사태 17주기를 맞아 홍콩엔 4만여 추모 인파가 몰렸지만 베이징에선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오히려 중국 당국은 발달된 정보기술(IT)을 이용해 국민을 더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세계적인 정보검색엔진 구글조차 중국 당국의 압력을 받아 중국어 사이트에서 반체제적 정보를 지웠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포털사이트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포털은 각종 뉴스를 모아 전달하는 객관적 메신저라는 통념에 대한 문제제기다. '자유주의연대'(대표 신지호)라는 뉴라이트 단체가 5.31 선거 직전 포털의 정치기사를 모니터한 결과 '편파적'이었다고 7일 주장했다. 여당 후보에겐 유리한 기사가, 야당 후보에겐 불리한 기사가 많았다는 분석이다. 포털이 뉴스를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각종 뉴스를 취사선택하고, 제목을 바꾸고, 배치를 달리하는 편집권을 행사함으로써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변희재(전 인터넷사이트 서프라이즈 대표)씨는 "각종 사업을 펼치는 포털의 목을 쥐고 있는 곳은 정보통신부"라며 "포털은 필연적으로 친(親)권력"이라고 주장했다. 포털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절대 평등한 참여 민주주의 공간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인터넷은 기술이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며, 그 속성은 민주적이다. 문제는 그 기술을 움직이는 사람, 혹은 세력이다. 모든 네티즌이 인터넷을 움직이는 사람과 세력을 정확히 감시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인터넷 민주주의의 신화는 가능할 것이다.

오병상 문화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