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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조합원 1400명 전과자 만들 수 없었지만 앞으론 예외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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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서울 강남권 재건축 공사 선정 비리 사건과 관련해 3개 건설사 임직원, 홍보대행업체 대표 등 총 334명을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찰이 이날 공개한 상품권, 태블릿 PC 등 재건축 시공사 선정 비리 관련 압수물품 [연합뉴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서울 강남권 재건축 공사 선정 비리 사건과 관련해 3개 건설사 임직원, 홍보대행업체 대표 등 총 334명을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찰이 이날 공개한 상품권, 태블릿 PC 등 재건축 시공사 선정 비리 관련 압수물품 [연합뉴스]

사업비가 총 10조원에 달하는 서울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재건축 사업과 관련해 시공권을 따려는 건설사나 홍보대행업체에서 금품을 받은 아파트 조합원 수가 1400명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재건축 단지인 신반포15차 아파트 조합원 중 건설사에서 금품을 많이 받은 9명은 피의자로 정식 입건됐다.

반포주공1, 신반포15차 등 강남권 재건축 비리 수사 #받은 금품 액수 많고 수사 방해한 조합원 9명도 입건 #한 조합원은 경쟁 건설사서 2000만원, 400만원 받아 #경찰 "이번엔 자수하면 선처했지만 앞으론 처벌할 것" #반포주공1은 조합 대행사가 특정 건설사 밀고 돈 받아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1일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신반포15차, 잠실 미성·크로바 재건축 과정에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을 위반한 혐의로 현대·롯데·대우건설 법인과 회사들의 임직원, 홍보대행업체 관계자, 조합원 등 총 334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시공권을 따내려는 건설사가 제공한 선물이나 돈을 받은 조합원은 많지만 경찰은 수사 초기 단계부터 홍보대행업체 등과 말을 맞춰 수사 진행을 방해하거나 금품을 많이 받은 이들만 입건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조합원 전부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건설 비리 수사가 처음인 만큼 사건 처리에 고민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금품을 받은 1400여 명을 전부 전과자로 만들 수 없어 이번만 자수를 한 경우 선처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에 따르면 금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 똑같이 처벌해야 하는 만큼 앞으로는 모두 입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재건축 과정에서 금품을 받으면 조합원도 예외 없이 처벌될 수 있다는 의미다.

현행법에서는 재건축 사업과 관련해 금품을 주거나 받은 경우 모두 똑같이 처벌한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따르면 법을 위반해 ▶금품, 향응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하거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사 표시를 승낙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경찰 조사 결과 현대건설이 반포주공 1단지(2200여 가구)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조합원에게 1억1000만원 상당의 고급 가방과 현금을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롯데건설은 신반포15차와 잠실 미성·크로바(1300여 가구) 재건축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조합원에게 2억원을, 대우건설은 신반포15차 재건축과 관련해 2억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거나 제공하려고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건설사들은 시공사 선정을 위해 고용한 홍보업체에게 용역비를 부풀려 지급하고, 이 홍보업체가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로비를 했다. 이 과정에서 건설사 직원들은 홍보업체에서 금품과 법인카드를 받아 쓴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신반포15차의 경우 기존 가구가 180여 곳으로 적지만 재건축 후 600여 가구 이상으로 늘어나 사업성이 좋은 곳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이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상당한 금품을 뿌린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에 입건된 조합원 친척은 "시공사로 선정되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롯데건설로부터 2000만원, 대우건설로부터 400만원을 각각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우건설의 담당 직원은 시공사 선정을 위해 고용한 홍보대행업체로부터 “다른 회사가 금품을 뿌리고 있어 돈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철거업체 대표에게 현금 1억5000만원을 받아 이를 급히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또 현대건설 담당 직원이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 수주를 도와준 대가로 조합총회 대행업체(정비업체) 대표에게 유령법인의 계좌로 5억5000만원을 준 것을 찾아냈다. 조합총회 대행업체는 재건축조합과 계약을 하고 총회 진행을 위해 조합원에게 연락을 하거나 각종 컨설팅을 하는 곳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합총회 대행업체는 시공사 선정 과정에 감시단 역할을 해야 함에도 오히려 특정 건설사를 은근히 홍보하고 돈까지 받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그러나 대행업체에 넘어간 돈이 재건축 조합으로 흘러간 정황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조합 간부는 조합총회 대행업체 인건비를 과다 지급한 것과 관련해 배임 혐의로 입건돼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한편 업계에서는 이번 비리가 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될 경우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의 시공사로 현대건설이 선정된 것의 적법성 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태우 법무법인 예헌 변호사는 “공동 사업시행건설업자 선정 과정에서 입찰 지침이나 조합원 정관 등에 따라 준수해야 한 사항이 있다. 해서는 안 될 부정행위가 있었고 이런 부정행위가 총회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면 적법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973년 지어진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는 지상 5층으로 현재 2120가구가 살고 있다. 이번 재건축을 통해 지하 4층~지상 35층 건물로 지어진다면 총 5388가구가 사는 대규모 단지로 바뀐다.. [중앙포토]

1973년 지어진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는 지상 5층으로 현재 2120가구가 살고 있다. 이번 재건축을 통해 지하 4층~지상 35층 건물로 지어진다면 총 5388가구가 사는 대규모 단지로 바뀐다.. [중앙포토]

앞서 지난 7월에는 반포주공1단지 조합원 16명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조합을 상대로 지난해 9월 27일 진행한 시공사 선정 총회를 무효로 해달라는 '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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