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배<체육부장> 남북 단일 팀 구성 꼭 해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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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그런 대로 앞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 마당에 재를 뿌리자는 심사는 아니다. 그러나 남북체육 회담을 보는 마음은 아쉽기 그지없다.
이 체육회담이 진실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양측 관계자들에게 묻고싶다.
『북경아시안게임에 남북이 단일선수단을 구성하여 출전,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과시하고 통일의 기운을 앞당긴다』는 것이 이 회담에 양측이 합의하여 대좌하고 있는 까닭이자 명분이다.
따라서 지극히 숭고한 명분에 바탕을 둔 이 회담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힘을 스스로 지니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정치·경제·적십자회담과는 달리「북경대회에 단일 선수단을 파견하기 의한」체육회담은 동시에 논리적 허점과 모순을 깔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양쪽 사회가 어느 정도 폭넓게 교감하지 않는 상태에서 작위적인 단일 체육선수단구성이 실제로 얼마나 분단의 골을 좁히고 민족화합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것은 맨 처음 대내외적인 환성과 호기심을 모을 수 있을 뿐 필연코 일과성내지 단명의 해프닝으로 그칠 공산이 큰 것이다.
우리는 같은 분단국인 독일의 선례를 흠모하면서 단일 팀 구성이 마치 지선의 염원인양 연연하고 있지만 그 동·서독이 한때의 시도 후 올림픽 단일 팀 구성을 전혀 재론하고 있지 않는 현실을 직시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것이 부질없는 에너지의 소모일 뿐 스포츠라는 단순구조의 도구가 난마와 같은 정치적 갈등이나 이해에 영향을 주기엔 어림없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체육회담과 관련된 몇 가지 소견을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첫째, 북한측이 북경아시안게임 단일 팀 구성을 먼저 제의한 것은 아무리 부인해도 명백히 정략적이다. 중국에서의 대한민국의 존재나 경가를 제거하거나 약화시키자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로선 체육회담의 성사, 즉 단일 팀 구성을 꼭 매듭지어야할 정치적 곤경에 처해있다.
이 때문에 만약 회담이 결렬될 경우 북측은 남측에 대해 체육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오히려 관계의 악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반감이 더 커질 것이다.
둘째, 이러한 분석과 관련하여 우리측에서는 북측이 회담을 구실 삼아 결국에 가서 한국선수들의 북경 행을 저지시키려 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계속 쌓아가고 있다.
회담의 진행과 함께 양측사이엔 불신의 도랑이 동시에 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중국 땅에서의 각종 국제대회에 한국 선수단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참가하고 있는 현실을 상기하면 북한이 유독 북경아시아게임에 과민 해야할 이유도 별로 없는데 왜 그러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셋째, 우리측으로서는 북한쪽과는 달리 탄일 팀 구성이 현재로선 절실한 과제거나 목표일수가 없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맞으면 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측의 기본적인 입장을 북한측이 모를 리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회담이 난항할 경우 즉각 이 회담의「숭고한 이상과 명분」을 들어 정치적 선전공세를 펼 구실로 삼을 것이다.
때문에 당초 우리측이 북의 제의에 대해 의제의 수정이나 보완 없이 회담을 수락한 것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단일 팀 구성문제와 함께 남북 간의 스포츠직접교류 문제를 의제에 추가하자고 수정제의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다.
상호교류에 의해 이해와 화합의분위기를 조성한 후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단일 팀을 파견해 보자는 것은 정치. 경제분야의 것과 맥을 같이하는 우리측의 일관된 정책기조며 그것은 사실 순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번 체육 회담에선 그런 순서가 생략된 변칙 플레이를 한 셈이며 숨은 계산이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외견상으로는 일단 실수로 보여진다.
따라서 단일 팀에 대한 기대나 환상으로부터 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북한의 경우 진실로 통일의 열의에 차 있다면 스포츠 분야에서 남북 간 교류의 실시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의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단일 팀 구성은 정치적 조작일뿐더러 실질문제를 호도 하는 민중에 대한 기만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단일 팀을 구성하더라도 다른 분야의 여건성숙과 궤를 같이하여 1년 후의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겨냥하여 한번 도모해 봄직은 하다는 생각이다.
남북 양측의 사회지도자들은 단일 팀이라는 조형으로써 대중에게 일시적 카타르시스를 안겨 줘보자는 발상에 집착하기보다는 많은 체육청소년들을 국제무대로 내보내 자질을 연마시키는 일에 더 열중해주기 바란다.
사족이지만, 남북한 단일 팀이 구성되어 그 규모가 만약 5백명이라면 그 비슷한 숫자의 남북한 젊은 체육인들이 북경무대에 나갈 기회를 잃게 된다. 5백명의 단일선수단보다 1천명의 남북 체육인들이 북경에서 활약하고 서로 만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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